모든 시대와 모든 세대 그리고 모든 사유하는 개인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온전한 이해, 즉 자기인식과 이를 토대로 한 바람직한 세계관 확립일 것이다. 자신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도달한 사람은 우선 내면의 감정과 욕구를 심층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성향과 능력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기에, 쉽게 교만에 빠지지 않고 매사에 절제하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기인식에 도달한 사람은 내면 응시와 자기조절 능력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나 조직 차원에서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상당한 압박감을 주거나 복잡한 국면이 지속되더라도 외부 상황에 즉흥적으로 반응하거나 심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넓은 시각에서 보면 인문학의 역사는 인간의 자기인식을 향한 노력과 맥을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다. 흔히 문·사·철로 대변되는 인문학은 본래 다양한 독서와 경험과 사색을 바탕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지속해서 관찰하고 반성해 봄으로써 새로운 사유물을 도출하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학자는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연구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시도할 뿐만 아니라, 그 대상과 마주하고 있는 연구자 자신의 태도에 관해 지속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과정은 다시 그가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적으로 가치 있는 삶을 넘어서 자신이 속한 사회나 조직에서 구성원을 이끌고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지도자의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자신에 대한 앎이 필요조건은 될 수 있겠지만 충분조건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경우에는 자기인식에 더하여 리더십과 리더스피릿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가치 있고 지속 가능한 인문학 담론은 사유와 행위의 주체가 자기인식에 도달한 상황에 만족하거나 중단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출발점 혹은 마중물 삼아 세상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까지 감내할 수 있는 지도자의 자세와 역량을 논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주지하듯이 한 리더의 사리 판단과 현실적인 선택은 개인적인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 그가 이끄는 조직이나 사회의 미래 모습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띠라서 리더는 단지 자신이 이끄는 조직의 외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능력을 갖추거나 수치상의 성과를 창출하는 일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판단이나 선택에 관해서 항상 윤리적 태도를 견지하고 그것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책임 의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 그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조직의 미래를 준비하고 기획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누군가가 지성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단기적인 성과를 내더라도 그것이 초래할 장기적인 결과나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가진 지위와 영향력의 크기에 비례하는 정도로 주변과 세상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리더라면 생산성 향상이나 조직관리 같은 현실적인 역할과는 별개로 윤리적으로 올바른 동시에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인데, 이러한 노력의 과정과 성공은 다시 리더의 자기인식을 전제로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리더가 매사에 온전한 자기인식에 기반해서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그는 개인적인 삶에서 그리고 자신이 이끄는 조직 안에서 가치 있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며, 변화된 현실은 다시 그를 이상적인 지도자로 새롭게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선순환을 자기인식과 리더십의 변증법으로 부르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서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활동하며 서양 인문학 초창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소크라테스(c. 470-399 BC)와 플라톤(c. 428-348 BC)의 경우에 잠시 주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