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이미지가 조용한 은자의 나라였던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선이야 말로 유럽인에게는 가장 나중까지 미지의 땅(Terra incognita)으로 남아 있었으니. 유럽에 조선이 반도국가로 제대로 알려지게 된 것은 18세기나 돼서였고, 그 간에는 한반도에 대한 지리적 정보는 심각하게 왜곡되거나 혹은

아예 지도에 표시되지 않을 정도였다.

유럽에 처음으로 한반도의 지리적 정보가 소개된 것이 1254년.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의 루브룩에 의해서였다. 중국국경 너머 'Caula'라는 나라가 있는데, 섬나라인 이곳에 들어가면 나이가 멈춰진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로 유럽인들의 환상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보가 무려 350여년간이나 수정되지 않은 채 유럽인들이 만든 지도에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한반도의 유럽인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고 존재감이 없었던 것이다.

동아시아 자체가 유럽인에게 인식이 돼 있지 않다가 동아시아에 대한 지리적 정보를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방견문록은 유럽인들이 한반도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중국은 'Cathai'로 일본은 'Jipangu'로 표시돼 있었던 반면 한반도에 대한 정보는 한 줄도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인에게 한반도는 여전히 왜곡된 채 존재했다.

15세기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세계지도 제작에 일대 변화가 이루어졌다. 알려지지 않았던 대륙과 인류과 관련한 다양한 지리적 정보가 보충되고 또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세계지도가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그럼에도 16세기 후반까지도 동아시아는 부정확하게 표현됐다. 일본은 하늘을 하는 연 모양으로 그려졌는가하면 한반도는 지리적으로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지리적 정보가 더욱 풍성해지고 정확해 진데에는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선교사들의 공헌이 컸다. 세계지도인 '곤여만국전도'를 제작해 조선이 섬이 아니라 반도라고 밝히며 그 존재를 유럽사회에 알린 것이 마테오 리치였다.더 넓은 세상의 존재를 일러주는 것으로 중국의 화이관에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에 대한 정확한 지리적 정보가 유럽인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된 것은 아니었다. 표류했던 하멜이 '표류기'를 통해 조선을 타원형 섬나라라고 보고해 유럽인들이 혼란에 빠지기도 했으니.

분명 조선은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나라로 가장 마지막까지 미지의 땅으로 남아 있었지만 18세기에 이르러서 프랑스출신 예수회 선교사에 의해 실제적으로 측량되었다. 이후 당빌의 지도에 정확한 경도와 위도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로 표시되었다.

나이가 멈춰지는 신비로운 땅 'Caula'에서 반도의 독립국가로 세계지도에 기재되기까지 5백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던 것이다.

'세계지도의 역사와 한반도의 발견'은 소책자 책인데 상당히 알차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세상 시리즈처럼 흥미로운 소재를 다채롭게 다루고 있는 살림 시리즈. 한반도가 세계지도에 제대로 기재되기까지 군더더기 없이 핵심적인 과정을 잘 담아냈다.

나이가 멈춰지는 땅이라니, 환상을 넘어서 황당무계하기까지 한 생각을 어떻게 한 것인지 어이없기도 했지만, 시황제가 불로초를 갈구했던 것처럼 저 너머에 머나먼 땅에 영원히 늙지 않는 땅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세계지도가 완전히 과학적인 산물이 아니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상상과 환상, 신앙을 반영하던 시대에서 항해와 측량을 통한 실제적 정보를 확보하고, 인쇄를 통한 보급이라는 문명과 상업적, 종교적 필요성이 결합되면서 세계지도는 점차 정확성을 확보해 나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