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동굴 속에 갇힌 한 마리의 토끼가 빛을 찾아 동굴을 빠져나왔을 때 홍두깨같이 찌르는 빛의 충격에 눈이 멀어 버린다는 우화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토끼가 살고 있는 ‘굴’은 밝음과 어두움, 꿈과 현실, 열림과 갇힘을 연결해 주는 통로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굴 속의 토끼의 삶은 전혀 불행을 모르는 삶이지요. 이는 자아의식이 형성되기 이전의 유아 상태를 나타냅니다. 하지만 자유를 위해 자아를 구속하는 동굴에서 탈출하고자 한 토끼가 햇빛을 받자마자 눈이 멀었다는 것은 개념 자체에 대한 맹목성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이 토끼 이야기는 누혜의 삶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곧 동굴 밖으로 나와 눈이 먼 토끼의 운명과 이데올로기에 눈멀었던 누혜의 삶은 닮은 것입니다. 작가는 개인의 존재와 그 의미가 전쟁 상황 속에서 사상, 인민, 계급과 같이 추상적이고 공허한 개념에 의해 훼손되어 버리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