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고 단정함을 넘어 경건하고 엄숙하게까지 느껴지는 시 83편이 4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정계영 시인은 일찍이 조병화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나 진중한 성격 탓으로 이제야 그 첫 시집을 냈다. 그는 시작詩作에서 일체의 군더더기나 헤픈 칭얼거림을 용서하지 않는다. 본 시집에 수록된 시, 어느 한 편도 유행가 뽑듯 가볍게 쓴 작품은 없다. 마치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가 정성을 다하여 금을 제조하듯, 혹은 깊은 산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을 명상이라는 정수기로 다시 걸러내듯, 그야말로 정제했다. 그렇게 해서 간결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때문에 그의 시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사색이라는 투자가 얼마간 필요하다. 그 투자는 가을날 숲길에서 쾌적한 솔바람을 맞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 되어 되돌아온다. 또 그의 시세계는 넓고 다양하면서도 그 처리 방법은 간명하다. 인위적인 의식세계와 다양한 자연의 세계를 두루 넘나들며 때로는 관조하듯, 때로는 그 핵심으로 파고들어 섭렵한다. 정 시인은 ‘시인은 영혼의 화가’라는 디즈테일리의 말을 실감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