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배(胸背)는 상복(常服)의 가슴[胸]과 등[背]에 부착하여 계급을 나타내었던 표식이다. 백관(百官)의 흉배 제도를 처음 정한 것은 단종 2년(1454)으로 당상관(堂上官)과 함께 대군(大君) 및 왕자군(王子君)의 흉배 문양을 정하였다. 그리고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포함시켜 제도를 명문화하였다. 반면, 왕은 법 위에 있는 존재로 왕과 왕세자에 대한 내용은 법전, 즉 『경국대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조선 전기 왕실의 흉배 제도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왕과 왕세자의 흉배 제도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확립되어 대한제국 시기까지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문양으로 왕을 상징하는 용(龍)을 사용하였으며, 발톱의 수를 달리하여 신분에 따른 차등을 두었다. 반면, 왕비와 왕세자빈의 흉배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영조 때 편찬된 『국조속오례의보서례(國朝續五禮儀補序例)』에서 제도화되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전까지는 명(明)에서 사여받은 적계(翟?) 문양을 사용하였으며, 이후 봉황(鳳凰) 문양을 사용하다 『국조속오례의보서례』에서 비로소 용으로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