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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조선시대 왕실 흉배 연구
글쓴이
송수진 저
출판사
도서출판 역락
출판일
2025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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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송수진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원광디지털대학교에 편입하여 한국복식과학학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의류학과에서 전통복식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담인복식미술관에서 학예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20세기 한복용 핸드백에 관한 연구」, 「근대 한국 여성 운동복에 관한 연구」, 「조선 후기 왕실 군복용 용보 연구-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흉배본과 어진을 중심으로-」, 「흉배에 사용된 합성염료에 관한 연구」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한눈에 보는 침선』(공저)이 있다.

책 소개

분야기타계열
흉배(胸背)는 상복(常服)의 가슴[胸]과 등[背]에 부착하여 계급을 나타내었던 표식이다. 백관(百官)의 흉배 제도를 처음 정한 것은 단종 2년(1454)으로 당상관(堂上官)과 함께 대군(大君) 및 왕자군(王子君)의 흉배 문양을 정하였다. 그리고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포함시켜 제도를 명문화하였다. 반면, 왕은 법 위에 있는 존재로 왕과 왕세자에 대한 내용은 법전, 즉 『경국대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조선 전기 왕실의 흉배 제도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왕과 왕세자의 흉배 제도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확립되어 대한제국 시기까지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문양으로 왕을 상징하는 용(龍)을 사용하였으며, 발톱의 수를 달리하여 신분에 따른 차등을 두었다. 반면, 왕비와 왕세자빈의 흉배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영조 때 편찬된 『국조속오례의보서례(國朝續五禮儀補序例)』에서 제도화되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전까지는 명(明)에서 사여받은 적계(翟?) 문양을 사용하였으며, 이후 봉황(鳳凰) 문양을 사용하다 『국조속오례의보서례』에서 비로소 용으로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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