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어떤 누구도 희망을 말하지 않는 이때 “한국인에겐 분명히 희망이 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오로지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대한 소박한 사랑 하나만으로 지인들과 긴긴 만남을 거듭한 끝에 결국 ‘우뇌론형 한국인에겐 희망이 있다’는 결론을 내놓은 이시형 박사. 신경정신과의 전문지식인이 경제, 뇌과학, 정신 분석적 소견까지 아우른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무모한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우뇌형 한국사회’가 왜 희망적인지를 구체적이고 필연적인 근거를 또박또박 제시해가는 그의 메시지에는 무엇보다 확신이 있고 힘이 있다.
자잘한 일상의 스케치 속에서 그가 잡아내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날카롭고 때로는 따뜻하다. 좌,우뇌의 양반구로 이루어져 있는 대뇌의 구조에서 주로 언어적 사고, 지성, 논리형인 좌뇌에 비해 이미지적 사고, 감성, 직관적인 우뇌형이 대부분인 한국은 그동안은 난관의 터널을 잘 지나왔다. 굶주림과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지나온 세대들은 더더구나 40년만에 GNP 400배라는 수치에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한번 뭉치면 불가능할 게 없는 민족성은 우뇌형의 극치를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신명만 나면 폭발적 에너지를 분출시킬 수 있고, ‘잘 살아보자’는 구호를 종교적 신념 자체로 버텨온 한국인.
그러나 그런 한국이 긴 터널로 다시 들어갔다. 어디서 불빛 하나 새어들어올 틈이 없는 긴 터널 속을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그동안 해오던 식으로 저돌적으로 아무곳이나 빛이 보일 때가지 터널을 뚫고 무조건 부딪쳐 볼 것인가? 이에 저자는 과감히 ‘아니다, 지금까지의 방법대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우리의 힘이요, 희망이 될 수 있는 우뇌적 창조성이 우리에게 함정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진단은 세대를 초월해서 깊이 새겨들어야 할 전국민의 숙제다. 세기가 바뀌면서 세계는 바야흐로 산업사회의 과학기술 시대에서 서서히 문화의 시대로 바뀌고 있으며, 대량소비, 유행의 시대에서 소량 주문 개성의 시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다시 희망론을 내놓는 근거는, 세계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문화의 선두의 무리에 우리 한국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산업동력과는 다른 각도의 문화적 동력을 분출시키는 젊은이들에게서 저자는 한 줄기 강한 빛을 보는 것이다. 희망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세대를 초월한 한국인 모두에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희망의 엽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