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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흑백
글쓴이
노병희 저
출판사
애지
출판일
2025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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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2015년 계간 ≪부산시단≫으로 등단한 노병희 시인의 첫 시집 「그래서 흑백」이 애지시선 시리즈 127번째로 나왔다.

노병희 시인은 사진작가로도 활동하며 제2회 ‘부산 어묵 사진’ 공모전 대상, 제12회 ‘건설근로자 사진’ 공모전 대상 등 다수 수상했고, 2019년 고성 디카시 공모전에도 입상한 심미안을 첫 시집에 고스란히 녹여낸다.
시인은 존재적 고뇌, 가족, 아버지와 누나, 이웃, 노동자, 인연이 없지만 외면할 수 없는 타자의 삶에 시선을 주고 언어로 발화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평범하지 않은 깊이를 찾기까지 절제된 감정으로 기억을 불러내거나 응축하고 비운 목소리로 누군가를 호명하는 시선은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여운이 짙다. 해설을 쓴 최은묵 시인은 “노병희 시의 장점은 애써 말하지 않고 힘을 주지 않고 말을 덜어내고 참음으로 울림의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가령, 시 「섬진강 누나」에서는 “백양산 자락 강물에 산그림자 눕고//그 강물에 고무신 흘린 누나는 맨발로 눕고//누나 손 잡고 강변을 걷던 어린 날은 눕지 못하고” 라는 전문에서 보여지듯 산그림자 누운 곳에 맨발로 누운 누나와 그 기억을 무심히 강물로 흘려보낼 수 없는 화자의 내면을 담담하게 응축함으로써 오히려 넓고 깊은 이미지를 그려낸다.
시 「모난 돌」에서는 등 굽은 아버지, “먼저 가신 아버지”를 소환하며 둥글어진다는 건 “닳는다는” 것이고, “닳는다는 건 몇 겹 껍질을 벗어내는 일”임을 통찰하는 시선이 간결하고 담백하다.
한편 「ND400」는 노인병원 의사의 사진을 통해 “살아온 이야기 하고 또 하고, 지치지도 않는 무용담을” 늘어놓는 노인들의 삶을 담아낸다. 또한 “소독약 냄새가 살아온 모든 색을 지워버린” 흑백의 느낌을 빛을 줄여서 시간을 확보하려는 ND 필터 이미지로 변주한다. 최은묵 시인은 표제작이기도 한 이 시의 해설에서 “다 비운 것도 아니고, 끝점도 아닌, “쉼과 멈춤 사이에 어울리”는 흑백은 오래전 기억으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노병희 시인 주변을 맴돌던 화두였음이 틀림없다.”고 진단한다.
시인이 겨울이나 그림자처럼 채도를 잃은 삶의 바탕에 깊이 마음을 둔 까닭은 축적된 관찰과 오랜 고민의 흔적이다. 죽음을 소환하여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겨울 이미지를 통해 봄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철길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시 「겨울을 견디는 이유」에서 시인이 꿈꾸는 시세계가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채우는 봄의 세상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번 시집은 타자를 품고 어울리며 발화되는 언어로 온기를 채우는 서정이 두드러진다. 누나로부터 아버지로, 비정규직 김 씨로부터 2022년 10월의 이태원에 이르기까지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하며 세상의 그늘지고 아픈 곳을 따듯하게 바라보고 어루만지는 시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다. 종교적 시선도 일상의 삶과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
그 과정이 곧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지켜주고 싶은 것들”을 향한 깊은 응시와 기도임을 낮고 고요한 서정으로 들려준다. 그래서 “쓰려던 말들이 번진 잉크처럼 멀어져도 펜을 쥔 손은 따듯했으면”(「지금 여기부터」) 바라고 있는 시인의 시세계는 맑은 풍경소리 같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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