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재미나고 처연하게 그려낸 인생 비망록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것이다. 악전고투로 살아온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나온 생의 환상과 권태와 희망과 환멸이 뒤섞인 추억은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추억을 발판 삼아 미래로 나아간다. 추억은 가혹한 현실을 살아내는 존재를 환하게 불 밝히는 쏘시개로 작동한다. 그리하여 추억을 먹고 마시고 태우며 사는 인생은 살만한 것이다.
양병호 시집 『그리워라 홍길동』은 지나온 추억을 생동감 있게 리메이크하고 패러디한다. 시인을 키워온 문화예술철학과의 치열한 연애를 사색한다. 시인은 노래와 그림과 시와 영화와 책과의 신나는 연애사를 몽상한다. 그 추억은 아름답다. 그러나 처연한 슬픔이 배어있다. 그 추억은 재미나다. 그러나 아릿한 실의가 풍겨난다. 마치 인생이 기쁨과 슬픔과 희망과 좌절로 점철되어 있듯이.
전북대학교 국문과 교수인 양병호 시인의 이번 시집은 36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하는 기념시집으로 기획되었다. 자신의 정신과 영혼에 자양을 공급한 예술작품을 소환하여 고마운 마음을 헌정한다. 그가 소환한 예술가와 작품 목록은 다채롭다. 가요에 양희은, 송창식, 진성, 송대관, 배호, 이장희, 목포의 눈물, 황성옛터 등, 시(인)에 만해, 소월, 영랑, 릴케, 에밀리 디킨슨, 헌화가, 공무도하가, 쌍화점 등, 그림에 고흐, 샤갈, 이중섭, 김홍도, 신윤복, 박수근, 뭉크 등, 영화에 쇼생크 탈출, 닥터 지바고, 빠삐용, 러브 스토리, 영자의 전성시대, 용쟁호투 등, 서적에 어린왕자, 만다라, 논어, 무소유, 별, 돈키호테, 빨간책, 선데이서울 등이다. 하여 이 시집은 앞서간 문화예술인들의 성취를 신나게 재생하고 업적을 재미나게 고양하는 헌정시집의 성격을 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