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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봄의 이름으로 (라울 뒤피 에디션)
글쓴이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저
출판사
문예출판사
출판일
2025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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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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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프랑스의 작가, 마임배우, 무용수, 저널리스트. 20세기 전반기에 가장 독보적인 프랑스 작가. 프랑스 역사상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최초의 여성. 20대인 1900년부터 1903년까지 클로딘 연작 4편을 썼고(거의 감금된 상황에서) 남편의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1년에 1편씩 썼으니 엄청난 생산성에 가혹한 노동 착취라 할 만하다. 이 클로딘 연작은 당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세기 최초의 사춘기 소녀'가 탄생한 것이다. 일상의 경험, 내밀한 감정, 사적 관계를 탐구하는 유연하고 서술적인 산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문학적 경향, 내면의 복잡성을 포착하고 일상생활의 세부 사항을 조사하려는 당시의 문학적 경향에 딱 들어맞았다.

콜레트는 일곱 살에 발자크를 비롯해 코르네이유 등 프랑스의 고전을 탐독한다. 전직 군인이자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세금 징수원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프랑스어와 글쓰기 수업을 받았다. 부모의 따듯한 사랑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특히 집 안뜰의 정원에서 관찰 기술을 터득한다. 부르고뉴의 숲과 정원, 그 향수는 평생 콜레트 글쓰기의 근원에 자리 잡았다. 남편 윌리(Willy)는 당대의 영향력 있는 음악 평론가이자 작가, 그리고 출판 업자였다. 그는 젊은 아내를 파리의 문학계와 음악계에 소개했는데, 그곳에서 가브리엘은 부르고뉴의 거친 악센트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젊은 아내의 글쓰기 능력에 놀란 Willy는 그녀를 쉐도우 대필작가로 이용한다. 클로딘 시리즈는 당시 문화현상이 될 정도였다. 클로딘의 단발머리가 도처에서 튀어나와 파리를 휘젓고 다녔다. 1906년 자신의 글에 관한 그 어떤 권리도 얻지 못한 채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 후 콜레트는 뮤직홀에서 당대 최초의 여성 마임 배우가 된다. 그녀의 의상, 그리고 동료 여배우와의 키스 등으로 쇼는 경찰로부터 공연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1906년 윌리와 헤어진 후에 쓰기 시작한 글들이 바로 출간을 앞둔 「les vrilles de la vigne 포도덩굴손」이다. 스무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 어린 시절의 정원과 숲의 기억, 그리고 당시의 파트너인 마틸드 드 모니(미시)와의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이 시기 콜레트는 작가로서의 직업적인 성취도 이루기 시작한다.

1912년 콜레트는 정치인이자 언론인인 Henry de Jouvenel을 만나 결혼한다. 외동딸 Colette Renee de Jouvenel을 두었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40세의 나이에도 당시 16세였던 남편의 아들 베르트랑 드 주브넬 (Bertrand de Jouvenel)과 5년 동안 연인관계로 지낸다. 이때의 이야기가 1920년 소설 '셰리'로 출간된다. 소설은 베르트랑 드 주브넬과 관계를 맺기 몇 년 전인 1912년에 구상했다고 해서 환상이 현실이 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두 번째 남편과는 1923년에 이혼) 1910년대 후반엔 신문의 평론 기고와 연극 각색에도 참여하고 Maurice Ravel과 음악 작업도 함께하면서 배우, 작가, 가수이자 작곡가로 벨 에포크의 유명 인사가 된다.

1929년엔 대공황 속에서 생계를 위해서 파리의 rue de Miromesnil 에 '미용 연구소' 일종의 뷰티샵을 열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향수와 화장품을 만들고 여성들의 피부관리를 직접 해주기도 했다. 물론 기대했던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1년 만에 문을 닫는다. 그 해 콜레트는 자신보다 16살 적은 나이의 세 번째 남편인 Maurice Goudeket을 만나 결혼한다. 전쟁 중에는 남편 모리스가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자 비시 정부의 유력 인사들을 비롯해 각계의 인물들을 동원해서 남편을 수용소에서 구출해낸다.

고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그녀는 주로 침대에서 수많은 신문에 글을 쓰고 소설을 출판한다. 그녀의 비정치적 성향과 재정적 필요로 인해 독일 점령기의 협력주의 신문, 페탱주의 신문에도 글을 썼고 지하 언론의 저항 세력으로부터는 거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 점령을 옹호하거나 찬양하는 글은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그녀는 점령기의 일상, 전시의 여성들의 삶의 고단한 풍경을 써나갔을 뿐이다.

1945년엔 만장일치로 공쿠르 아카데미에 선출되었고 1949년에는 공쿠르 아카데미의 회장이 된다. 명성을 얻으려면 자신의 이미지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빨리 이해한 그녀는 20세기에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힌 작가로 남는다. 1954년 8월 3일 사망 후 가톨릭교회의 장례식은 거부당했지만, 프랑스는 여성 사상 최초로 국가 장례로 콜레트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페르라세즈 묘지에 안장했다.

책 소개

분야에세이/산문
“꽃에 대한 사랑은 곧 세상에 대한 사랑임을.”

《셰리》 작가 콜레트 산문 미학의 절정!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 22편의 꽃에 대한 찬가
색채의 마술사 라울 뒤피 수채화와 흑연 드로잉 28점 수록

1947년 봄, 이 책은 한 다발의 꽃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문화의 아이콘이자 20세기 전반 프랑스 문학의 독보적인 존재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는 관절염으로 침대를 떠나지 못하는 처지였다. 스위스의 출판업자 앙리 루이 메르모는 콜레트에게 일주일에 한두 번 꽃다발을 보낼 테니 그 답으로 꽃의 ‘초상’ 몇 편을 써달라고 제안했다. 들판의 초목을 그리워하던 콜레트는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1년 후인 1948년 22편의 글이 묶여 출간되었다. 원래는 초판부터 라울 뒤피의 삽화를 곁들일 예정이었지만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던 화가의 데생은 1951년 호화장정본에야 실릴 수 있었다.

《셰리》와 《여명》, 클로딘 시리즈 등을 쓴 콜레트는 모든 작품에서 예리하고 섬세한 감각과 신선하고도 적확한 표현으로 문장 하나하나를 완성했다. 특히 자연 묘사에 재능이 남달랐고 그중 식물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콜레트에게 나무와 풀, 꽃은 의식주만큼이나 삶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콜레트의 식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체는 《봄의 이름으로》에서 꽃이 만개하듯 피어난다. 콜레트는 꽃을 ‘알아내기’ 위해 감각을 총동원하고 매혹적인 비유와 은유를 통해 각각의 꽃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 작품이 콜레트 산문 미학의 절정, 나아가 프랑스 산문 미학의 전범 중 하나로 뽑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봄의 이름으로》에는 콜레트의 글을 시각 언어로 번역하듯 식물에 리듬을 부여한 라울 뒤피의 수채화 14점과 흑연 드로잉 14점, 총 28점이 수록되어 있다. 1951년 호화장정본에 들어 있던 그림들로, 뒤피는 유려한 선과 화사한 색채로 식물의 감정을 번역하듯 보여준다. 이 책에서 글과 그림이 펼쳐내는 봄과 초록, 화사한 꽃들의 세계는 단순히 식물의 표면적 아름다움을 넘어, 그 속에 담긴 감정, 시간, 기억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문학과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꽃에 대한 사랑은 곧 세상에 대한 사랑임을. 일어날지도 모르는 모든 신비와 기적에 대한 사랑임을.” -정여울 작가(《데미안 프로젝트》 저자, KBS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콜레트의 글은 단순한 서술을 넘어 식물들을 향한 편지가 된다. 그것도 시시콜콜한 일상과 프랑스에서의 삶과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연애편지가.” -유선혜 시인(《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저자)

“꽃잎처럼 경쾌하고, 햇살처럼 명랑하며, 바람처럼 리듬을 품은 선으로 말하는 그림들.” -이소영 미술 에세이스트(《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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