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한 사람이 사라진 세계에 가까운,
우리는 결국 시제가 없는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이미 죽은 것 같은 기분으로
수많은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이장욱의 여섯번째 시집
시는 어쩌면 이 물질 자체, 의미 이전에 존재하는 물질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 물질의 어둠을 생각하고, 그 그림자를 느끼고, 그 그림자의 내부로 걸어 들어가서, 천천히, 말하는 사람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는 심연에서 온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2-2.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시 쓰기」, 『영혼의 물질적인 밤』(문학과지성사, 2023)에서
시인 이장욱의 여섯번째 시집 『음악집』이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599번째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앞서 『정오의 희망곡』(2006)과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2016)의 표지를 장식한 이제하 작가의 캐리커처가 아닌 시인의 자화상이 들어가 있어 특별함을 더한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 해설 대신 들어간 각 시편에 관한 ‘후기’는 시인의 단상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확장하고 시 읽기의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일상에서 외롭지 않은 순간을 ‘낯설다’라고 감각하는 시인은 어떤 상황이나 행동의 의미를 좇기보단 존재 자체를 들여다보는 일에 몰두한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착각에 불과했던 순간들을 살피는 것만이 시인의 소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는 “빗소리 수많은 각자의 시간들이 떨어지는 빗소리”가 스며들어 있고, 천천히 불어오는 “먼 곳의 음악”은 외로움의 근원에 대해 부연하지 않는다. 이장욱에게 시란 세상의 소리를 일정 기호로 기록하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물질이 훼손되지 않게끔 보관하는 작업이기에. 이는 시집의 제목이 세상이 무수히 답습해온 “악보집”이 아닌 시인의 단 한 번 숨결이 닿은 “음악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마치 전생에 들어본 듯한 음악을 들려주듯 시인은 단정한 외로움과 쓸쓸함을 곱게 접어 우리에게 다시 한번 안부를 묻는다. “당신, 듣고 있어요?”(「시인의 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시적 언어의 우아함과 모던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이장욱은 이번 시집에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단일한 화자가 아닌 다양한 사람의 각각의 외로움 속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 배우, 마술사, 가수, 살인자, 우체국장, 대학 시절에 쓴 소설의 주인공까지. 시 속의 화자는 “음악집” 안에 모여 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엑스트라 배우”가 아니다. 각자의 삶이 빗방울이 되어 후드득, 시인의 눈앞에 떨어졌을 뿐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끝끝내 털어놓지 않은 비밀까지 헤아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삶이 아닌 죽음, 살아 있지 않은 상태와 가까이 두고 한층 더 초연해진다. 사랑에는 각주가 필요치 않고, 죽음에는 변명이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이미 죽어 있는 시인의 시선에서는 어떠한 구원이나 저주를 갈망하는 태도를 찾아볼 수 없다. 무심히 뒤를 돌아보는 순간, 고요하고 쓸쓸한 시인과 그의 시(詩)만이 남아 삶의 불안함에 대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때 진정한 결별의 의미를 알게 된 독자는 개인의 외로움이 짙어지고 세계와는 더욱 가까워지는 경험을 비로소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