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적 이념의 현실화는커녕
유토피아의 가능성 자체를 믿지 않게 된 오늘날,
‘책에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리 로트만은 18세기 러시아 문학의 위상을 논하는 한 저술에서, 18세기 러시아인들이 책을 대하는 독특한 태도를 “책에 따라 살기”라는 말로 표현했다. 당대 러시아의 문학 텍스트는 실제 독자들이 아니라 이상적으로 구축된 독자의 형상을 지향했으며, 실제 독자들 역시 이런 이상화된 모델을 일종의 규범으로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에, 사실상 독자들에게 단순히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책에 따라 살 것’이 요구되었다는 것이다. 삶과 예술의 경계, 책(이념)과 현실 간의 거리를 고집스럽게 거부하고, 삶의 현장을 끝없는 역사의 ‘실험대’로 바꿔놓으려 했던 이러한 극단적으로 원칙주의적인 태도가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제 더 이상은 아무도 ‘책에 따라’ 살려 하지 않는 우리 시대, 유토피아적 이념의 현실화는커녕 유토피아의 가능성 자체를 믿지 않게 된 이 시대에, 무한한 가능성과 현실적 위험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책에 따라 살기’라는 러시아적 태도를 다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