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인가 TV드라마를 통해 알게된 그림책 '폭풍우 치는 밤에'

어느 폭풍우 치는 밤, 비바람을 피해 작은 오두막으로 들어온 하얀 염소와 늑대는, 깜깜한 어둠 때문에 서로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게다가 둘다 코감기로 냄새도 맡지 못한다) 인사를 나눈다.

"당신이 와서 마음이 한결 놓이네요."

"이렇게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 이런 오두막에 혼자 있었다면, 나라도 좀 불안했을 거예요."

그렇게 날이 밝을 때까지 그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늑대는 염소고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어릴적 기억에 대해서도 주거니 받거니 들려준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정체를 알아챌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천둥소리라든지, 눈을 감는다든지 하며 번번히 엇갈리며 계속해서 대화를 주고 받는다.

해뜨기 전 오두막을 나서며 그들은 다음날 낮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서로 얼굴을 모르니, '폭풍우 치는 밤에'를 암호로 하자고 하면서.

"좋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잖아요."

"그럼, 우리 암호를 '폭풍우 치는 밤에'로 하지요."

막연히 늑대와 염소의 우정(또는 사랑) 이야기로 알고 있었는데, 책장을 다 넘기고 나니 다음날 다시 만날 그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서로를 자신과 같은 염소와 늑대로 알고 있는 그들이 마주쳤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암호를 외칠까? 아니면...(으앗! 무서운 상상은 하지 말자. 이건 그림책이니까)

비록 염소와 늑대는 계속해서 엇갈리는 대화를 나누었을지언정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 속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친구가 되었다(아직은 미완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을 '염소'와 '늑대'라는 기준으로 나누어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자기 입장에서만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기도 해 또다른 선입견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만난 그들이 서로 다름(특히나 염소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인)을 인정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 다음 이야기가 있는지 찾아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