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라리아라는 곤충 매개성 질환의 자연사, 인간사,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을 좇으면서, 때로는 위대하며 때로는 쩨쩨하며 때로는 타락하기도 한 과학자들의 모습을 살펴 볼 것이다”(로버트 데소비츠).
이 책에서 열대의학의 거장인 로버트 데소비츠는 ‘인류의 천형’이라 할 만큼 고래로부터 현재까지 인류를 괴롭혀 온 대표 전염병 말라리아(와 칼리자아르)를 소재로, 인간과 사회와 기생충에 대해 마치 선배 학자 혹은 할아버지처럼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특유의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필체, 소외된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허황된 약속으로 천문학적인 프로젝트 연구비를 챙기며 정작 현장은 외면하는 연구자들과 관료에 대한 냉정한 비판 등도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의 유행이 우리에게 던져 준 질문, 전염병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옮긴이가 어느 자리에서 지적했듯이, 전염병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를 넘어 미국과 유럽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백신 개발에 속도가 붙게 되었듯이, 애초에 말라리아 연구가 식민지 원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식민 ‘모국’의 군인과 관료, 상인들을 위한 것이었듯이, 전염병은 ‘소외’와 관련이 있다.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국가나 사람들만이 치료제나 백신 등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난한 지역 사람들이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에이즈나 에볼라처럼 일종의 낙인이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전염병은 다시 돌아올 수 있다. 한번 박멸되었다 하더라도, 예컨대, 그리스처럼 공공의료 예산을 줄이고 난 뒤 말라리아가 다시 돌아온 경우, 한국처럼 북한 지역에 말라리아가 유행하면서 넘어오게 된 경우처럼,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말라리아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소비츠에게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