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해설에서 평론가 박수연이 밝힌 바 있듯 송재학의 시는 감춤과 드러냄의 교과서이다. 툭툭 내뱉고 있구나, 하여 슬렁슬렁 들을라치면 재빠른 속도로 입 다물어버리는 조개처럼 깜깜, 우리로 하여금 그의 세계 안에서 오래도록 눈멀게 하는 힘.
그러나 그의 어조는 욕심 없이 실하다. 특유의 경상도 남자처럼 단정 짓는 말 매무새를 가졌지만 이에는 설득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여유가 있다. 투박한 질그릇인가 하였는데 정교하게 수놓인 백자 같은 시선, 이 중심에는 여전히 따스한 시인의 감성이 간 배어 있기에 우리는 별다른 투정 없이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 논리를 앞서는 경험의 위엄.
이처럼의 행간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전봇대 위에는 아직 지상에 안착하지 못한 새들이 있다. 새의 근심은 외로움만으로 콘크리트 둥지 속에 숨어들어간 건 아니라는 데 있다. 무뚝뚝하고 외롭게! 소금쟁이가 물 위에 떠 있는 게 아니라 물의 살점을 움켜쥔 채 수면 아래 물의 정강이뼈까지 만지며 저수지와 드잡이질 채비를 마친 것처럼, 그 전봇대요, 새요, 소금쟁이가 바로 시인이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