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인성교육은 주로 학교의 도덕 시간이나 가정에서의 훈계로 여겨졌다. 착하게 살아라, 예의 바르게 행동해라,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그 말들이 틀린 건 아니지만, 과연 그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언어였는지는 의문이다.
나는 요즘 ‘효’라는 글자를 자주 떠올린다.
孝.
이 한 글자에는 ‘나이 든 어르신’을 ‘젊은 자식’이 받드는 모습이 담겨 있다. 노인을 등에 업은 젊은 사람, 그 모습 하나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관계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가 모두 담겨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 ‘효도하라!’는 말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나는 처음으로 ‘효’라는 단어를 다시 바라보게 된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지하철 안이었다.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서 있는 어르신 한 분이 자리를 찾지 못해 흔들리고 있었고, 그 앞엔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중학생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누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 아이는 과연 ‘공경’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어봤을까?” “효를 누가, 언제, 어떻게 가르쳐주었을까?”
“부모를 모시기 힘들다”,
“내 삶도 버거운데 누구를 공경하나?”,
“효는 구시대의 유물 아닌가?”
이런 말들 속에는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세대 간의 단절과 감정의 피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효를 포기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