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 리스트
  • 구매
링거나무 아래서
글쓴이
이영혜 저
출판사
여우난골
출판일
2025년 10월 22일
  • 읽고있어요

  • 다 읽었어요

  • 읽고싶어요


저자

이미지

이영혜

null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벼랑 끝에서 피워낸 단단한 꽃잎들

시인수첩에서 이영혜 시인의 신작 시집 『링거나무 아래서』 (시인수첩 시인선 101)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경험과 가족, 여행, 사회에 대한 성찰을 담아냈다.

시집의 표제작 「링거나무 아래서」는 저자가 췌장 낭종으로 응급 입원하여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경험에서 출발한다. “주렁주렁 오랏줄에 묶인 수형자들 / 생명줄이 포승줄 같다”는 구절은 링거줄에 매달린 환자의 모습을 통해 자유와 속박,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암 환자들이 대부분인 병동에서 보낸 열흘이 넘는 시간은 시인에게 삶의 유한성과 소중함을 깨닫게 한 전환점이었다.

“오 척 육신에 종신으로 세 들어 살다가 / 불현듯 퇴거 명령 떨어지면/다 비워주고 홀홀 / 알 수 없는 먼 길 떠나야겠지”(「세입자」)라는 구절에서 보듯, 시인은 몸을 빌려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성찰하며 겸허한 자세로 삶을 대한다. 이와 같이 시집 곳곳에는 가족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 있다. 십여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삼선 슬리퍼는 여전히 “한 방향으로” 현관에 놓여 있고(「삼선 슬리퍼 한 쌍」),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점점 아이가 되어가”며 “우화등선을 꿈꾸고” 있다(「우화등선」).

“점심은 먹었니?”를 반복하는 어머니의 밥걱정은 한국적 모성의 정수를 보여준다. “유구한 자식 밥걱정”(「밥걱정」)이라는 표현처럼, 시인은 이제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 약을 챙기고 반찬을 사 들고 간다. 멀리 유학 간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픔(「영종도」)과 성장하는 손녀를 바라보는 기쁨이 교차하며, 생과 소멸의 물지게를 양어깨에 지고 걷는 시인의 모습이 애틋하다.

이영혜 시인은 『링거나무 아래서』에 수록된 시 편들에서 개인의 내밀한 경험을 넘어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시선을 돌린다. 탈북자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의 의료봉사 경험을 담은 연작시는 특히 인상적이다. "안녕하십네까?"라며 나팔꽃처럼 환하게 인사하는 탈북 여성들(「하나원 일지 1」), 손톱마다 희망의 꽃을 피운 네일아트(「하나원 일지 2」), 십여 년을 떠돌다 한국에 온 이의 “아래 송곳니 두 개만” 남은 입(「하나원 일지 3」)은 고통의 역사를 견뎌낸 이들의 삶을 증언한다.

“더 높고 더 싼 집으로 / 숨 가쁜 등정을 시작”하는 노인(「달팽이 계단 정류소」), 요금소 박스 안에서 네일아트로 미소 짓는 손톱들(「네일아트」),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바이러스 월드」), 가자지구의 비극(「누구를 위하여 불꽃은 터지나」) 등 시인은 우리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몽골 고비사막을 세 차례 여행하며 얻은 깨달음도 시집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끝이 없다, 경계가 없다 / 길이 없다”는 사막에서 시인은 “가고자 하는 마음이 길이다”(「고비, 길」)라는 철학적 통찰에 도달한다. 길 없는 길을 달리며 마주한 모래바람, 은하수 가득한 밤하늘, 구름 그림자는 삶의 여정에 대한 은유가 된다.

시인의 치과의사로서의 경험은 시집 곳곳에 독특한 색채를 더한다. “도화살에 난분분 꽃잎으로 쉬이 붉게 물들었고”(「살살」), “위 어금니 신경 치료도 끝나고 / 마지막으로 크라운을 씌운 날”(「하나원 일지 2」), “송곳니 두 개만 달랑 남았다”(「하나원 일지 3」) 등 구강과 치아에 관한 구체적 이미지들은 시인만의 개성 있는 언어 세계를 구축한다.

『링거나무 아래서』는 4부 58편의 시와 산문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로병사의 현장에서, 가족의 품에서, 사회의 그늘에, 광활한 자연 앞에서 시인이 발견한 삶의 의미들이 진솔하고 따뜻한 언어로 펼쳐진다. “맑은 정신 하나 / 바지랑대 끝에 새로 내건다”는 시인의 말처럼, 이 시집은 삶의 무게를 견디며 희망의 깃발을 올리는 한 시인의 용기 있는 기록이다.

전체 리뷰 (0)
최근 작성 순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