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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박지원 소설선
글쓴이
박지원 저
출판사
민음사
출판일
2025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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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박지원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들을 많이 지었다.

1780년(정조 4)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연암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이 결과 지어진 것이 『열하일기』이고, 이는 완성된 전권이 나오기 전부터 열띤 반응을 받았다. 50이 된 1786년, 연암은 음직蔭職으로 선공감 감역繕工監 監役으로 관직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상도 안의 현감安義縣監, 의금부 도사, 의릉 영懿陵令 등을 거쳐, 1797년부터 1800년까지 충청도 면천沔川(지금의 충남 당진)의 군수 등으로 재직하며 농업 장려를 위해 널리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綸音(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진상했다.

1800년 음력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승진했으나, 궁속宮屬과 결탁하여 양양 신흥사神興寺 승려들이 전횡하던 일로 상관인 관찰사觀察使와 의견이 맞지 않아 1801년 늙고 병듦을 핑계 대고 사직했다. 1805년(순조 5) 음력 10월 29일, 69세의 나이로 연암은 서울 북촌 재동齋洞(지금의 가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책 소개

분야소설
“덕이 있는 이에게는 사람이 모여들지. 덕이 없을까 걱정해야지 사람이 없을까 걱정하겠는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문인이자
실학을 대표하는 선각자 연암 박지원

옛것을 본받고 새로운 문체를 창조하며
서민의 가치를 우러르는 법고창신의 정신

주요 사본을 두루 교감하고 「발승암기」를 새롭게 제시한 소설 전문 수록

연암 박지원의 소설 열한 편을 엮은 『박지원 소설선』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학계에서는 김태준의 『조선 소설사』(1933) 이래 박지원의 소설을 열 편으로 보아 왔으나, 이 책에서는 역자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가 「발승암기」 한 편을 추가하여 열한 편을 제시했다. 「발승암기」가 연암의 다른 소설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목록을 만드는 데 그 의의를 두었다. 연민문고 초고본과 그 밖의 초고본에 가까운 주요 사본을 교감하여 정본을 만들고 원문을 제시했다. 교감한 내용을 원문에 밝히고 그중 중요한 변화는 번역과 주석에 반영해 박지원의 소설 세계를 풍부하고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18세기의 대작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조선 후기를 넘어 조선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걸출한 문호다. 연암은 소설가이자 산문가, 시인, 그리고 선각적 실학자로서 시대를 이끈 사상가로 꼽힌다. 그의 문장은 재기가 넘치고 수사와 착상이 뛰어나 “붓을 한번 들면 잠깐 사이에 천 줄의 문장이 콸콸 흘러나온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암은 자신의 창작 방향을 ‘옛것을 본받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규정했다. 그는 고대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18세기 조선의 인정세태를 반영하여 개성이 풍부한 문학을 창조했다. 특히 그의 문장은 틀에 박힌 식상함을 버리고 낯설고 생생한 구어적 표현을 구사하며, 해학과 농담을 섞고 인물의 참된 모습을 담은 대화를 삽입하여 현장감과 역동성을 극대화했다. 이처럼 독자를 지루할 틈 없이 사로잡는 독특한 문체는 연암체(燕巖體)라 불리며 한양 도성에서 널리 읽혔다. 비록 삼십 대 중반에 과거 시험의 길을 포기했지만, 그는 뛰어난 문장가로 명성을 쌓아 쉰 살 이후에는 지방관으로 봉직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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