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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신부 1
글쓴이
최은경 저
출판사
가하
출판일
2015년 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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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최은경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 그리고 잘 웃는 사람. 자판 치느라 지문이 벗겨진 사람. 밤이 낮같은 야행성이 강한 묘한 사람. 늘 기도하는 사람. 최은경 프리실라. 출간작 : 〈내겐 너무 힘든 그녀〉, 〈무휘의 비〉, 〈다정다감〉, 〈현주효영〉, 〈3%의 사랑〉, 〈포춘쿠키〉, 〈섬라곡국 이야기〉, 〈청실홍실〉, 〈파란만장 미스 왕〉, 〈애흔〉, 〈디스코〉, 〈마이 레이디〉, 〈메모라이즈〉, 〈여우보다 늑대〉, 〈향몽〉, 〈팔미에〉, 〈화월〉, 〈눈물아 멈춰줘〉, 〈리틀 닥터>, 〈취중담화〉, 〈1965, 서울〉, 〈아로하〉, 〈격애〉, 〈애담〉, 〈샤이닝스타〉, 〈블루하와이〉, 〈홀드 미〉, 〈청춘무곡〉

책 소개

분야로맨스
1. 책 소개

“아버지, 소녀는 시집 안 갈 것입니다. 시집 안 가고 아버지랑 어머니랑 살 것입니다. 어엉, 엉!”

웃음보따리 애기씨 슬안, 다섯 살 나이에 낭군님 정해졌구나! 하지만 마음에 담지 못할 이를 담은 채 방황하는 재림을 보며 소녀에서 여인이 되어 오직 그를 기다리는 슬안은 애타는 마음뿐인데…….

“너는 어른들이 어찌 사모하는지 아느냐?”
심히 부아가 난 슬안이 어깨를 쫙 펴고 대답했다.
“수시로 예쁘다 하지요? 편지도 써주고 맛있는 것도 나눠 먹습니다.”
“끝?”
“그럴 리가요. 흠, 흠!”
기를 쓰고 더 있다 외친 기개와는 달리 열없는 군기침을 연거푸 토해낸 슬안의 뺨이 붉어졌다.
“밤에는 한이불을 덮고 자지요.”
혹시나가 역시나라는 결론을 얻은 재림이 또 물었다.
“아이는 어찌 만드는지도 아느냐?”
“물론이지요.”
슬안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을 묻는 바보 재림에게 백점만점의 답을 들려주었다.
“은애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삼신할머니께서 점지해주십니다.”

2. 작가 소개

최은경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 그리고 잘 웃는 사람.
자판 치느라 지문이 벗겨진 사람.
밤이 낮같은 야행성이 강한 묘한 사람.
늘 기도하는 사람. 최은경 프리실라.

▣ 출간작

〈내겐 너무 힘든 그녀〉, 〈무휘의 비〉, 〈다정다감〉, 〈현주효영〉, 〈3%의 사랑〉, 〈포춘쿠키〉, 〈섬라곡국 이야기〉, 〈청실홍실〉, 〈파란만장 미스 왕〉, 〈애흔〉, 〈디스코〉, 〈마이 레이디〉, 〈메모라이즈〉, 〈여우보다 늑대〉, 〈향몽〉, 〈팔미에〉, 〈화월〉, 〈눈물아 멈춰줘〉, 〈리틀 닥터〉, 〈취중담화〉, 〈1965, 서울〉, 〈아로하〉, 〈격애〉, 〈애담〉, 〈샤이닝 스타〉, 〈블루 하와이〉, 〈홀드 미〉, 〈청춘무곡〉, 〈문란뎐〉

3. 미리 보기

“언제부터 슬안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냐?”
“예?”
“강보에 싸였을 때부터냐, 아니면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였느냐?”
황망한 재림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어찌나 황당하던지 뭔가에 목이 눌린 것처럼 숨이 다 막혀 왔다. 그럼에도 기를 쓰고 잠시 아득했던 정신을 악착같이 붙잡아 제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낯을 깎을 완강한 거부 대신 말귀를 잘 못 알아먹은 척 굴면서 슬안에 대한 정의를 확실히 하는 방법을 택했다. 안간힘을 다해 말가죽보다 더 뻣뻣한 입술을 늘였다.
“저런 누이라면 열이라도 좋겠습니다.”
이학로가 좀 더 몸을 재림 쪽으로 돌려 앉았다.
“술은 아비가 마셨는데 어찌 주정은 네가 하누? 누이가 아니라 배필로 묻는 것이 아니냐?”
돌아앉아 있던 이학로와는 달리 재림과 마주 보고 앉아 있어 환영이 아니라 봉변이라 부르짖는 재림의 표정을 환히 읽은 손호연이 넉넉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못났지?”
손호연의 농담에 재림은 정색을 하고 도리질을 했다.
“아, 아니옵니다!”
“예쁘다?”
“예쁩니다, 누이로서는. 허나 내자로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혼인이 본인들의 의사가 아닌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로 맞은 신부와 자식을 두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살아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보자면 낙향하기 전에는 종종 봐왔고 앞으로도 일 년에 두어 번은 볼 수 있는 슬안을 내자로 맞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하지만 아직 13세와 5세. 은애하는 마음을 듬뿍 담은 연서(戀書)를 위한 시구를 꿈꾸는 소년과 남자와 여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철부지. 부조화 중의 부조화이고 무엇보다 아직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슬안은 어려도 너무 어렸다. 그러나 이학로는 재림에게 슬안을 내자로 삼으라 명령했다.
“아직 어리나 네 사람이니 이제부터 눈여겨보거라.”
눈앞이 캄캄해진 재림이 난생처음으로 아버지의 뜻에 반기를 들었다.
“아버님, 소자는 아직…….”
혼서를 쓰지는 않았으나 이미 손호연과 사돈을 맺기로 하고 술까지 나눠 마신 이학로는 아들의 호소를 귓전에도 담지 않았다. 대신 이제 제집 사람이라 생각하니 아비의 품속에서 꼬물거리는 것까지 어여쁜 슬안을 불렀다.
“슬안아.”
이학로의 부르는 소리에 슬안이 아버지의 품에서 빠끔히 얼굴을 내밀었다.
“어떠냐? 낭군이 마음에 드느냐?”
“낭군이요?”
“신랑 말이다.”
“신랑?”
슬안은 신랑이라는 말을 되뇌고서 낭군이 신랑과 같은 말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깨우쳤다.
‘신랑? 그럼 난 각시? 신랑, 각시 하려면 연지곤지 찍고 혼인을 해야 하는데? 혼인하면 가마 타고 멀리멀리 가야 하는데? 하면 아버지도 못 보고 어머니도 못 보는데?’
생각이 부모와의 생이별에까지 미친 슬안이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으으응.”
재림은 넙죽 엎드려 절을 올리고 싶어졌고 슬안이 재림을 좋아한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학로의 얼굴은 짐짓 심각해졌다.
“어이? 못생겼느냐?”
이번에도 슬안의 고개는 아래, 위가 아니라 좌우로 저어졌다. 한시름 놓은 이학로가 담판을 지었다.
“하면 내 며느리 하자꾸나. 이 아저씨가 꼬까옷도 많이 지어주고 예쁜 댕기도 사주마.”
재림은 당장이라도 슬안을 가마에 태워 한양 집으로 데려갈 것 같은 아버지를 만류했다.
“아버님, 이리 급하게 마시고…….”
그러나 얼큰한 취기에다 사내아이와는 다른 슬안의 깜찍함에 반한 이학로는 슬안을 재촉했다.
“가자, 가자. 예쁜 꽃가마 태워 가마. 꽃방석에 앉혀주마. 금가락지, 은가락지, 칠보 노리개 말만 하거라. 이 시아버지가 다 사주마.”
이학로의 적극적인 청혼 공세에 슬안이 하얗게 질렸다. 작은 손으로 아버지의 도포자락을 틀어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우어엉!”
“어?”
갑작스러운 울음으로 방 안 사람들을 일제히 놀라게 한 슬안이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호소했다.
“아버지, 소녀는 시집 안 갈 것입니다. 시집 안 가고 아버지랑 어머니랑 살 것입니다. 어엉, 엉!”
이학로는 무안해졌고 할 수 있다면 오래, 오래 품에 안고 싶지만 딸이 출가외인이 되어야 하는 여자의 운명을 거스르는 것은 원치 않는 손호연은 목을 놓아 우는 슬안을 설득했다.
“지금 가라는 것이 아니야. 이다음에, 키가 어머니만큼 자라거든 그때 가는 것이야.”
그래도 슬안은 막무가내였다.
“싫습니다, 싫습니다! 어어엉! 아버지, 아버지이!”
손호연은 고르고 고른 며느리를 맞을 수 있음에도 이제는 낙향한 향반의 여식일 뿐인 슬안을 선뜻 받아준 친구 보기가 민망해 으름장을 놓았다.
“어허!”
그에 슬안은 금방이라도 숨을 놓아버릴 것처럼 자지러지며 울어댔다.
“어엉, 어어엉!”
“네 이놈!”
“우어엉! 끅, 끄윽!”
아버지도 무섭지만 시집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슬안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것을 본 이학로가 급히 백기를 들었다.
“됐다, 됐다. 시집 안 와도 된다.”
그래도 부모와 생이별을 할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공포에 빠진 슬안은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죽자 사자 아버지의 옷섶을 붙들어 잡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목을 놓았다.
“어엉! 어엉! 아버지이!”

감당하지 못할 두려움에 작은 몸을 쥐어짜 펑펑 눈물을 쏟아낸 슬안은 기어이 탈이 나고 말았다. 열이 났고 잠을 자면서도 헛소리를 하는 통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다행히 재빨리 쓴 약과 시집가지 않아도 된다는 손호연의 약속에 열도 내리고 헛소리도 멈췄다. 하지만 하루사이에 보름달처럼 통통했던 볼은 살이 쑥 내려 반달이 되어버렸다. 만삭의 몸으로도 밤을 꼬박 새워 딸을 간호한 박씨 부인은 진한 곰국을 한 수저 가득 떠 유모에게 안긴 슬안에게 내밀었다.
“한 입만 더 먹자.”
억지로 받아먹긴 하지만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는 슬안은 손으로 입을 가려버렸다. 절반이나 먹었으니 다행이나 그래도 한 입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박씨 부인은 슬안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상으로 내걸었다.
“한 입만 더 먹으면 약과 주지.”
자다가도 약과 소리만 들으면 벌떡 일어나는 슬안은 슬그머니 입을 가렸던 손을 내렸다.
“참이시지요?”
“어미가 거짓말을 할까? 범례야, 너 어서 가서 약과 가져 온.”
발 빠른 범례가 부엌으로 날쌔게 달려가자 슬안은 박씨 부인이 주는 곰국을 받아먹었다.
“옳지! 잘했다.”
박씨 부인이 약속대로 수저를 놓자 슬안이 우울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다보았다.
“어머니, 소녀 때문에 힘드시지요?”
박씨 부인은 시집가라는 말에 병을 얻을 정도로 통곡을 한 철부지이나 무거운 몸으로 간호를 한 어미를 생각해주는 그 마음을 예쁘고 귀하게 여겼다.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 자식 때문에 힘든 부모는 없느니.”
“얼른 낫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슬안이 자애롭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어머니에게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짓는데 범례가 돌아왔다.
“마님, 마님!”
범례의 호들갑에 박씨 부인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이 이리 시끄러운고.”
“손님이 오셨시니더.”
“손님이라니.”
연락도 없이 깊은 안채로 찾아올 손님이 없기에 묻는 박씨 부인의 말에 범례가 고했다.
“한양 도련님께서 오셨시니더.”
재림을 일컫는 한양 도련님이라는 말에 슬안이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어머니, 무섭습니다. 가라 하십시오. 얼른 자기 집으로 가라 하세요. 예?”
병까지 나고 만 슬안에게는 혼인은 없을 것이라 약속했으나 이학로와 손호연이 맺은 약조에는 변함이 없었다. 재림과 슬안 둘 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문제이니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거라 믿었다. 그래서 당사자들에게는 적당한 시기가 될 때까지 함구하고 기다렸다 정식으로 절차를 밟자 합의를 봤으니 이미 재림은 사위였다.
박씨 부인은 백년손님인 사위를 박대할 수는 없어 슬안을 거짓말로 달랬다.
“시집 안 가도 된다.”
“참이십니까?”
“참이다마다.”
어머니의 철석같은 약속에 마음이 놓인 슬안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우!”
그 모습을 본 박씨 부인은 옅은 미소를 머금고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마루로 나갔다. 재림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박씨 부인은 환히 다 보이는 방문 이유를 물었다.
“안채까지는 어인 일이신가?”
고개를 든 재림이 고했다.
“병세가 궁금해 들렀습니다. 차도가 있는지요?”
“염려 덕분에 많이 좋아졌네.”
슬안이 병을 얻은 것이 모두 제 탓만 같아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안채까지 찾아온 재림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잠시 봐도 되겠습니까?”
“지금은 좀 곤란한데.”
“아, 예.”
박씨 부인은 즉시 자신의 뜻을 수용하는 재림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소세하고 머리도 빗어야 하니 잠시만 기다려주겠나?”
재림은 아차 싶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 하나 여인이니 외간남자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아니 될 일이었다.
“소생의 생각이 참으로 짧았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서두르겠네.”
“그럼.”
고개를 숙여 보인 재림이 안채를 빠져나가자 박씨 부인은 범례를 재촉했다.
“소셋물 대령하거라. 서둘러라.”

해쓱하긴 해도 세수를 한 뒤 머리를 빗고 병아리처럼 샛노란 저고리에 다홍치마까지 입고 나니 슬안은 나팔꽃처럼 어여뻤다. 혼인은 무섭지만 재림은 여전히 예쁘다 생각하는 슬안은 멀쩡한 옷고름이 눈에 거슬렸다.
“유모, 나 이거 다시 매줘.”
“반듯한데요, 애기씨.”
슬안은 짐짓 엄한 목소리를 냈다.
“어허, 다시.”
재림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딸의 마음을 엿본 박씨 부인이 손을 내밀었다.
“어미가 매어주마.”
“예!”
박씨 부인은 한결 쾌활해진 슬안의 옷고름을 다시 꼼꼼히 매어주고 매만져주었다.
“됐다.”
“예쁩니다.”
“말 가려 하고 떼쓰지 말고.”
“예.”
슬안의 단장을 마쳐준 박씨 부인이 유모에게 슬안을 맡겼다.
“데려가게.”
“예, 마님. 애기씨, 업히시어요.”
슬안이 유모의 등에 답삭 업히자 유모가 무릎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오겠습니다, 마님.”
“어머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너라.”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제 방을 나와 재림과 만나기로 한 후원으로 가던 슬안이 유모를 불렀다.
“유모.”
“예, 애기씨.”
“응. 있잖아, 있지.”
유모는 뭔가 하기 어려운 말인 듯 자꾸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슬안에게 믿음직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말씀하세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맹세합니다.”
유모의 철석같은 약속에 슬안은 조금 부끄러운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시집가서도 우리 집에서 살면 안 돼?”
“예?”
“나도 우리 집에서 살고 서방님도 우리 집에서 살고.”
유모는 슬안이 시댁에 봉사해야 하는 여자의 운명을 거스를 생각을 하는 것이 재림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눈치 챘다.
“되지요.”
슬안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기뻐했다.
“정말?”
“예. 아내가 무남독녀이면 남편이 처가살이를 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한양 도련님처럼 장자이면 그리 못 하지요.”
“왜에?”
“왜긴요. 장자는 부모님도 봉양해야 하고 조상님도 모셔야 하는 것을요.”
슬안의 엉덩이가 축 늘어졌다.
“그렇구나.”
유모가 슬안의 엉덩이를 위로 밀어 올렸다.
“시댁으로 가서 사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머님을 보세요. 마님께서도 본가를 떠나 시집을 오셨지만 행복하시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서운해도 서방님이 잘해주고 시어른들께서 예뻐해주시면 친정은 금세 잊어집니다.”
유모의 말에 슬안은 이마까지 찡그려가며 반기를 들었다.
“싫어! 난 시집 안 가고 우리 집에서 살 거야! 아버지랑 어머니랑 오래오래!”
“아이고, 예. 예, 애기씨. 한데 유모는 같이 안 살고 버리실 겁니까?”
슬안이 두 팔로 유모의 목을 꼭 껴안고 도리질을 했다.
“아니, 아니! 유모하고도 오래오래 살 거야. 꼬부랑 할머니가 돼도 밥 많이 줄게. 예쁜 옷도 많이, 많이 지어주고. 그러니까 유모도 나랑 오래오래 살아야 돼. 알았지?”
“예, 예. 애기씨.”
“좋다아.”
흡족해 마지않는 슬안을 업고 가볍게 발을 놀린 유모가 후원에 닿았다. 누런 황금빛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옥구정(玉鉤亭) 위에 서 있던 재림이 고개를 돌려 슬안과 유모를 보았다. 유모는 날쌘 걸음으로 옥구정 위로 올라갔다.
“수고가 많네.”
“아닙니다요. 애기씨, 내리세요.”
슬안이 무릎을 굽힌 유모의 등에서 내려왔다. 어린 마음에 시집가지 않겠다 울고불고, 앓기까지 했어도 혼인 말이 오간 탓인지 왠지 재림을 마주 보기 부끄러워 유모의 치맛자락을 잡은 채였다. 유모가 슬안의 손을 떼어내며 재림에게 당부했다.
“애기씨 아직 미령하시니 오래 붙잡지는 말아주십시오.”
“그리하겠네.”
“하면 쇤네는 물러갑니다요. 애기씨, 곧 모시러 오겠습니다.”
유모가 사라지자 먹쇠가 얼른 슬안이 앉을 방석을 놓았다. 재림이 슬안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자.”
슬안이 쭈뼛쭈뼛 자리에 앉았다. 보름달 같던 얼굴이 하루사이에 반달이 된 것을 본 재림이 안타까움을 전했다.
“많이 아팠구나.”
재림의 말에서 느껴지는 자책감에 슬안은 도리질을 했다.
“많이는 아닙니다. 조금, 아주 조금 아팠을 뿐입니다.”
“얼굴을 보니 많이 아팠는걸?”
“아닌데. 곰국도 많이 먹고 약과도 두 개나 먹었는걸요.”
“그래?”
“예. 저녁에도 밥이랑 국이랑 한 그릇씩 먹을 것입니다. 그럼 내일은 싹 나을 겁니다.”
저 때문에 재림이 가슴 아파하는 것을 원치 않는 슬안이 볼우물까지 패가며 웃자 재림은 그런 슬안에게 어제부터 마음에만 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
“무엇이요?”
슬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바로하고 물었다.
연꽃을 따겠다 한 것도, 시집가지 않겠다 떼를 쓰다 앓아누워버린 것도 모두 제 탓이라 여겨 재림의 사과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재림은 슬안에게 제 잘못을 낱낱이 고했다.
“위험한 일이고 부리는 사람이라 함부로 굴어서는 아니 된다 타이르면 될 것을 다짜고짜 부아를 내고 다그쳤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일이었다.”
슬안의 얼굴이 연시처럼 붉어졌다.
‘아닌데. 내가 잘못한 건데.’
재림이 제 잘못이 너무도 부끄러워 얼굴만 붉힌 채 간질거리는 입술만 오물거리는 슬안에게 나머지 마음도 전했다.
“그리고 고맙고.”
슬안의 고개가 또 옆으로 기울어졌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 기울임에도 재림은 입 안에 머금고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어려 이해를 못 한다고 그 말들을 내어놓는 것은 슬안에 대한 예의가 아니어서였다.
‘내 대신 혼인하지 않겠다고 해줘서 내 짐을 덜었으니 엎드려 절을 올려야 할 일. 허나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면 청혼을 거절한 것이 되니 입 안에만 두련다.’
슬안은 밑도 끝도 없는 재림의 고맙다는 말이 키워낸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뭐가요?”
재림이 답했다.
“다. 모두 다.”
“으응?”
재림은 그래도 모르겠다는 듯 동그랗고 큰 눈을 끔벅이는 슬안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고는 청했다.
“눈 좀 감아보련?”
“어이요?”
“좋은 거 주려고.”
좋은 것이라는 말에 슬안은 단박에 눈을 질끈 감았다.
“손.”
슬안은 척 두 손을 나란히 내밀었고 재림은 아기 단풍잎 같은 그 두 손에 도포 소매에서 꺼낸 진분홍 댕기를 올려주었다. 손에 느껴지는 가벼운 무게감의 존재가 심히 궁금한 슬안이 조바심을 냈다.
“눈 떠도 됩니까?”
“떠보아.”
재림의 허락에 슬안은 심청이를 만난 심 봉사마냥 눈을 번쩍 떴다.
“와아!”
귀에 걸린 슬안의 입으로 슬안이 꽃과 나비가 섬세하게 수놓아진 댕기에 마음을 쏙 빼앗겼다는 것을 알면서도 재림은 물었다.
“마음에 들어?”
슬안은 접시꽃처럼 예쁜 함박웃음과 함께 천둥소리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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