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은 질문의 도구다.
비평을 통해 건축을 평가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
나에게 비평은 건축을 통해 생각하는 것이다.”
역사·비평·큐레이팅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지성, 배형민이 말하는 한국 현대 건축
우리는 건축에서 태어나 건축에서 죽는다. 건축 공간이 인간의 삶과 필연적으로 함께하기 때문이다. 공간은 집뿐만 아니라 거리와 골목, 공원, 빌딩과 스카이라인 등 사람들이 일상에서 스치고 거쳐 가는 장소를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은가’, 나아가 ‘인간은 어떤 장소에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건축은 주로 부동산의 언어로 소환되고, 집값 논쟁으로 쉽게 귀결되곤 한다. 이미 한국 건축은 개발의 도구나 자본의 논리로만 이야기할 시기를 지났다. 좋은 장소가 풍부해졌기에, 이제 건축의 공공성을 확인하며 문화로서 건축을 체험하고 말해야 한다.
『건축 너머 비평 너머: 갈망, 사유 그리고 애정의 비평』을 쓴 배형민은 한국 현대 건축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겪은 사회의 격동, 건축의 변화, 담론의 성장을 가까이 목격하고 사유한 이다. 서울시립대 교수이며, 한국 건축의 현장을 함께한 비평가다.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초대 감독을 지낸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건축, 디자인, 인문학 등을 넘나드는 다면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기획과 연구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기에, 건축계는 물론 문화예술 분야의 많은 전문가와 독자가 그의 책을 기다렸다.
『건축 너머 비평 너머』는 건축의 역할과 가치에 관한 질문을 전면에 두고, 한국 현대 건축의 다양성과 건강함을 펼쳐 보인다. 역사성과 현장성을 녹여낸 비평, 130여 컷의 이미지와 도면, 논리적 이해를 이끌면서도 정서적 공감을 일으키는 서술을 통해 한국 현대 건축을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순서대로 읽어도, 관심 있는 주제 혹은 아는 건축가를 다룬 글부터 읽어도 좋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된다. 1부 「말과 얼굴」은 김수근과 승효상, 김석철, 민현식과 유걸, 신경섭 등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 건축의 역사적 배경과 정체성 담론을 말한다. 2부 「사유와 감각」은 김승회, 최욱, 임재용, 최문규, 조민석, 승효상 등 건축가를 통해 건축 규범과 공간 조직, 도시의 변화에 적응하는 건축 방법론, 역사성과 건축 미학, 시간과 장소의 문제 등 근원적인 주제를 다룬다. 3부 「텍토닉스」는 이정훈, 조병수, 조남호, 바래 등의 작업을 바탕으로 재료·구조·물질의 과제를 다루며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건축, 건축에서 실패의 의미, 건축의 실험에 관해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부여박물관, 공간 사옥, 서울시청, 이우학교, 설화수의 집,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서울석유 사옥,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쌈지길, 카카오 사옥, 제주 오설록 단지, 왜관 수도원, 노무현 대통령 묘역, 설해원 클럽하우스, 지평집, 숨 쉬는 그물, 에어 빔 파빌리온 등 한국 현대 건축의 지평을 넓힌 건축들도 만날 수 있다. 『건축 너머 비평 너머』는 때로 논쟁의 중심이 되고 때로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낯선 경험을 선사한, 이토록 다양하고 건강한 한국 현대 건축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