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꼭 결혼이어야 할까. 결혼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닐까. 오래된 질문은 늘 고개를 든다. 우리는 답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다만 판결처럼 박제된 한마디가 아니라, 생활의 체온으로 확인하는 쪽을 택했다. 한 달. 달력 한 장의 너비. 그만큼의 바람과 빛과 빨래와 요리와, 서로의 숨을 나눠 쓰는 실험.<br />우리는 약속한다. 서류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시간을 과감히 열어보자고. 출퇴근 후의 피곤한 어깨, 설거지의 미세한 소리, 새벽의 물 끓는 숨결, 창틀에 기대 선선한 밤을 같이 건너는 일을 미리 결혼이라 부르지 않기로. 이름을 붙이면 쉽게 굳어지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이름보다 내용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br />서로의 속도, 각자의 침묵, 아침의 습관과 저녁의 허기를, 며칠에 한 번씩 스스로의 고독을 정리하는 방법까지. 그 모든 것을 한 달 동안 투명하게 펼쳐 보이기로 한다.<br />이 한 달은 시험이 아니다. 점수 없는 관찰이며, 채점 없는 기록이다. 다만 기록은 정직하려 한다. 오늘의 불편을 내일의 변명으로 넘기지 않는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성향이어서 미뤄지는 일들이 분명히 있다. 우리는 그 성향의 모양을 배운다. 너의 산만함은 창의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고, 나의 깔끔함은 통제의 가면일 수도 있다. 서로를 고치려 들지 않고, 다만 각자의 모양이 우리 둘의 합 속에서 어떻게 울리는지 귀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