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를 향한 절멸의 욕망이 실현된 뒤에 남는 것은 파국이다. 역사 속에서 확인되는 고통스러운 교훈이 무색하게도 이 욕망은 거침없이 반복된다. 인류는 자신들과 인종, 종교, 정치, 문화 등에서 다른 존재에 대한 두터운 편견에 사로잡혀 그들을 향한 이디오진크라시(자신과 다른 모습의 존재를, 이질적이기 때문에 피하려 하고 더 나아가 혐오스러워하기까지 하는 본능적 의지와 욕구)를 자행해 왔다. 신체가 다른 인간에 대한 경멸, 신앙이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 상이한 가치를 지닌 이들에 대한 적대, 다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폄훼 위에서 불행한 인류사가 이어지고 있다.
『칼라스 재판과 볼테르』는 ‘소설 같은 논픽션’이라고 평가받으며 제12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받았다. 정치학, 사회학, 철학을 아우른 연구자가 논문이나 학술서 대신 일종의 ‘사고실험’이라고 할 법한 형식으로 쓴 이 책은, 관용(톨레랑스)이라는 개념의 창시자 볼테르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칼라스의 재판’을 배경으로 한다. ‘절멸의 욕망’ 앞에 파괴되는 사회의 잔혹한 풍경 속에 우리를 초대하고는, 그 폐허에서 일어나려면 어떤 가치를 움켜쥐어야 할지를 묻는다. 결국 이는 우리의 확신이 정의인지 광신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