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부터 쇼와에 이르는 근대 일본에서 활동한 언론인, 비평가, 사상가이자 역사가다. 대표작 『장래의 일본』의 성공으로 세간을 주목을 받으며 언론계의 주요 인사가 되었다. 젊은 날에는 주로 평화주의와 자유주의, 평민주의를 주장했지만 청일전쟁 이후에는 국가주의자로, 제국주의자로 변모했다.
책 소개
분야역사
메이지 2세대 사상가의 기수. 앞세대를 부정하면서 일본의 미래를 그리다.
미성년 상태에서 메이지 유신을 경험한 젊은이들에게 이미 근대 문물은 어려서부터 익숙했다.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보다도 어떻게 저들을 따라잡을 것인가가 당면 목표였고 세상에는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쿠토미 소호는 구마모토 시골에서 태어나 구마모토 양학교와 도시샤 영학교에서 공부했다. 신식 교육이긴 했으나 체계적이진 못했고 그나마 중퇴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소호는 스스로 공부했고 아버지와 함께 사설 학숙을 열었는데 갓 20세의 소호가 가르친 것들은 대단히 폭넓었다. 그렇게 가르치면서 자신의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다듬어 출간한 것이 『장래의 일본』이었다. 이것이 일본 전역에서 읽히며 소호는 단번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곧 잡지 『국민의 벗』을 창간하고 이어 『국민신문』을 창간하며 소호는 언론계의 중요 인물이 되었다.
메이지 초기까지 일본의 사상가들은 서구에 비추어가며 근대국가와 국민 만들기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들은 문명개화를 통해 만들어낼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짧았고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체화하며 조금씩 위험한 나라가 되어갔다. 일본이 근대화와 동시에 제국주의 국가가 된 것은 아니다. 그 역사적 변화를 제대로 짚기 위해서 우리는 중요한 `제국주의자'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