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의 기원은 민중미술인가, 서구 포스트모더니즘인가
1990년대의 역사화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눈을 얻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진영에 따라 작가에 따라 새로운 구원처로 보이기도 하고 매도되고 배척되어 마땅한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을 둘러싼 진영 간의 유례없던 치열한 논쟁을 마치 현장에서 목도하는 듯이 치밀하게 추적하고 재구성해간다. 오늘날의 미술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 지상공방전과 전시기획을 둘러싸고 실명 릴레이로 펼쳐지는 국면들을 뒤쫓으면서 논점들을 추출해낸다. 그리고 이를 다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서구의 원전과 모방 간의 간극, 이러한 간극에서 발생하는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오역, 오인이 일어난 현상의 의미를 추출해낸다.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문화 번역의 한 양상으로 해석하면서 한국미술의 동시대성의 의미가 불가피하게 서구미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힌다.
저자는 한국미술의 동시대성을 서구미술과 연관 지을 때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한다고 보는데, 서구미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가 그것이다. 저자는 당시의 비판적 논자들의 문제제기를 따라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한국미술사의 재구성에 관한 새로운 과제들을 추출해내고 보완 작업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기존의 미술사에서 철저하게 누락된 재미 작가들의 활동이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이들의 활동이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을 규명하는 의미 있는 참조점을 제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싸고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양 진영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논쟁은 그 불꽃같은 섬광만큼이나 이내 사그라들고 말았다. 저자는 다양한 이유들을 밝혀내는데, 논자들의 이론과 현장 작가 및 작품 사이의 괴리, 각각의 진영 내부에서의 변화 양상들, 이를테면 미술비평연구회의 해체와 제도 안팎에서의 운동방식에 대한 다양한 모색, 새롭게 등장한 소비자본주의에 반응하는 신세대 미술의 다양한 양태 등을 점검한다. 책에는 이를 시각적으로 입증해줄 작품과 참고자료 150여 점의 칼라 도판이 수록되어 전환기의 미술을 시각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