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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단편 전집 3
글쓴이
토마스 만 저
출판사
부북스(BooBooks)
출판일
2025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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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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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1955년 동독 및 서독에서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강연을 하고, 고향 도시 뤼베크의 명예시민이 되어 스위스로 돌아왔지만, 혈전증 진단을 받아 8월 12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취리히 근교 킬히베르크 교회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열차 사고〉

한 화자가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 겪는 짧은 ‘사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화자는 여행하는 내내 열차의 흔들림과 소음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사고가 날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는 열차의 작은 진동에도 죽음이 다가온다고 상상하며, 머릿속에는 이미 큰 재난이 벌어진 듯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사고’는 단지 열차가 갑자기 멈추면서 다른 객차와 가볍게 충돌한 정도이고, 승객들은 놀라기는 하지만 금세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평온한 분위기로 돌아간다.

〈열차 사고〉는 제목과 달리 비극적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사고 가능성에 과도하게 불안해하는 인간 심리를 다루며 풍자하는 경쾌한 단편이다. 화자는 사고를 문학적으로 상상하고, 비장한 감정에 몰입하고, 자신의 죽음을 미리 연출하지만, 정작 실제 사고는 미미한 충돌에 불과하여 승객들은 곧 일상적인 대화로 돌아간다. 이 대비는 인간이 현실 그 자체보다 자기 감정과 상상이 만들어낸 세계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토마스 만은 이러한 과장된 불안과 자기 연민을 가볍게 비틀어, 죽음을 둘러싼 ‘문학적 포즈’와 예술가적 감수성의 과잉을 희화화한다. 화자의 극도로 예민한 반응과 사고의 실상 사이의 간극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스스로의 상상과 공포에 사로잡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거대한 감정적 동요도 결국은 일상의 소음 속으로 흩어진다는 인간적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결국 이 작품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인식의 왜곡과 인간 마음의 연약함을 주제로 한 작은 심리극이자 유머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토마스 만의 전체 작품들과 연관 짓는다면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기술 문명 속 현대인의 과민성, 충격, 신경적 반응성이다. 토마스 만은 부르주아적 삶의 나약함과 신경질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내면에서는 병들어 있는 인간의 초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1924년 발표한 작품, 《마의 산》의 병·건강·문명 비판을 준비하는 문제의식과도 연결된다. 〈열차 사고〉는 그래서 단순한 사고담이 아니라 근대적 주체의 병리학적 초상화이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병이 아니라 병에 대한 공포가 인간을 병들게 한다”는 통찰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작품 해설 - 윤순식

〈야페와 도 에스코바르가 치고받은 사연〉

이 단편은 원래 빈의 유력한 일간지 〈신자유 신문Neue Freie Presse〉의 1910년 크리스마스 특집을 위한 주문에 따라 그해 11월에 집필되었다. 하지만 실제 첫 발표는 1911년 2월에 발간된 뮌헨의 〈남독일 월간지S?ddeutsche Monatshefte〉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1914년에 베를린에서 출판된 토마스 만의 첫 단편집 《신동. 단편집Das Wunderkind. Novellen》에 묶여 나온 바 있다. 여기에 함께 실렸던 다른 6편의 작품들은 〈신동Das Wunderkind〉, 〈산고(産苦)Schwere Stunde〉, 〈예언자의 집에서Beim Prompheten〉, 〈어떤 행복Ein Gl?ck〉, 〈일화Anekdote〉, 〈열차 사고Das Eisenbahnungl?ck〉이다.

작품의 서사는, 사춘기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와 이를 지켜보는 주요 인물들의 관전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띤다. ‘사내다운’ 면모를 둘러싼 자존심에 휩쓸려 싸움을 벌이는 청소년들은 (작품명에서 언급된) 독일인 야페와 스페인인 도 에스코바르이지만, 서사의 내적 관심은 서술자 ‘나’와 그의 친구 조니로서, 이들이 실질적인 ‘주인공’인 셈이다.
지금까지 토마스 만의 전체 작품에서 문학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단편으로 남아있지만, 사실 여기서 토마스 만 문학 특유의 자전적인 핵심 요소로서의 주요 모티프와 서사적 주체, 즉 궁극적으로는 자전적 작가 토마스 만 자신의 의식과 심리가 매우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 그의 전체 작품에서 가장 기본적인 바탕을 이루고 있는 동성애 모티프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생각과 갈등이 핵심적인 요소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토니오 크뢰거〉에서 주인공이 동경하던 한스 한젠은 조니로 다시 등장하고 있을뿐더러, ‘남자답지’ 못한, 혹은 ‘여자 같은’ 발레 마이스터 프랑수아 크나크는 이름까지 그대로 옮겨졌다. 또한 ‘남성적이자 여성적인’ 존재의 대명사 “아모르”로 비유되는 조니는 바로 다음 해에 발표될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미소년 타치오를 상당히 선취하고 있다. 서술자 ‘나’는 싸움의 당사자들보다 사실상 조니의 존재와 자신의 혼란스러운 성역할 의식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드러냄으로써 토마스 만의 전 작품을 이끌어가는 핵심 요소로서의 성적 갈등과 함께 그런 문제의식의 문학화를 환기시킨다.

이 작품에서 언급된 유럽의 시대적 위기 역시 상당히 현실적이다. 이 소설이 집필되고 발표되던 시기의 유럽은 곳곳에서 영토 분쟁으로 전운이 가득했다. 특히 작품이 발표되기 직전, 즉 1911년 봄에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북아프리카 모로코 남부의 항구 아가디르를 둘러싸고 일어난 분쟁이 대표적이다. 독일 소년 야페가 상대적으로 약한 체질에도 불구하고 소위 ‘북구의’ 냉정한 정신력으로 제압해 낸 도 에스코바르가 겉멋에 찬 스페인 소년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로망스어를 쓰는 남구의 라틴계 국가라는 점에서 분명 연관성이 있다. 실제로 아가디르 분쟁이 프랑스에 유리하게 마무리됨에 따라 독일 내에서 팽배하던 반 프랑스 정서는 곧 다가오는 1차 세계대전으로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단편에 내재된 복합적인 요소는 더욱 흥미롭다.
작품 해설 - 김륜옥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나르시스의 시선: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병과 죽음, 사랑을 동일한 범주로 그려낸 토마스 만의 초기 미학적 사고를 결산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인공의 에로스적 욕망은 무엇보다도 보는 행위를 통해서 생겨나고, 그것은 시각적 환상을 통해서 그려진다. 투철한 삶의 태도로 시민적 삶을 영위하며 작가로서 명성을 날려 온 중년의 남자 아셴바흐가 여행에서 마주친 한 소년에게 이끌려 순식간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그를 그처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시선의 교류이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몰락의 첫 단계부터가 산책 중 공동묘지에서 만난 한 “범상치 않은 모습의 낯선 남자”를 바라보게 됨으로써 시작된다. 이 남자는 아셴바흐에게 불현듯 여행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앞으로 이어질 사랑의 죽음의 세계로 가는 여행의 출발점이 된다. 그 낯선 남자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눈앞에는 원초적인 자연의 이미지로서 무질서와 혼란의 세계를 나타내는 하나의 시각적 상이 펼쳐지는데, 그것은 그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무의식적 욕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잠깐 동안 마주친 이러한 환상은 지금까지 지탱해 온 모든 삶을 무너뜨리고, 사랑과 죽음의 세계를 향해 가는 여정의 신호탄이 된다. 그것은 질서도 경계도 없고 자아와 타자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합일의 세계를 나타낸다. 그가 바라본 시각적 이미지는 아직 아버지의 법을 알지 못하는 아이가 어머니와의 결합을 꿈꾸는 유아기적인 상상의 세계와도 같다.

그에게 이미 오랜 전에 잊혀졌던 그러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인물인 타치오란 소년과의 관계는 언어가 전혀 없는 완전한 시선만의 관계이다. 그러한 시선의 교류는 아셴바흐가 죽는 순간까지 이루어지는데, 여기에서 시선에 의해 야기된 에로스적 욕망은 동성애의 성격을 지닌다. 타치오가 눈길과 함께 보낸 나르시스의 미소, 즉 “자기 자신의 영상을 향해 팔을 뻗는 저 오묘하고 매혹적이며 매혹을 당한 미소”를 보았을 때 아셴바흐의 사랑은 극에 달한다. 불현듯 보게 된 시각적 환상이 아셴바흐의 에로스적 욕망을 자극했다면, 그러한 욕망은 미소년 타치오와의 이러한 시선의 관계를 통해 극단적인 상태에 이른다. 명부의 세계로 안내하는 사자 헤르메스와도 같이, 바닷물 속을 들어가 그에게 손짓하는 타치오를 바라보며 아셴바흐는 마침내 죽음을 맞게 된다. 이처럼 시선의 교류를 통해 분출된 에로스적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 주인공은 그가 그토록 투철하게 지켜온 시민적 질서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랑과 방종, 무질서, 죽음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시각적 만족으로서만 표출되지만, 주인공을 죽음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이 소설에서 시선과 시각적 환상, 에로스, 동성애는 죽음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아셴바흐는 죽음과 속임수와 질병과 에로스의 도시 베네치아로부터 도주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그것은 자크 라캉이 말한 바, 거울 속에 비친 허구적 이미지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바라보고 환호하는 아이를 연상시키는 ‘상상적 주체’의 회귀로 생각할 수 있겠다.
작품해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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