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자기 고백적 문체로 상실을 그리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유년 시절, 그 비밀스러운 시기에 대해 파헤친 아름답고 쓸쓸한 작품
『창백한 언덕 풍경』을 시작으로 순문학, 역사 소설, SF를 가리지 않고 활발한 활동을 해 온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00년 발표한 장편소설 『우리가 고아였을 때』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되돌릴 수 없는 유년 시절에 대해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려 집필한 이 소설은 발표된 그해 휘트브레드 문학상과 부커 상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타임》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된 후속작 『나를 보내지 마』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일인칭 화자의 불완전한 기억을 담담한 회고담의 형식으로 풀어 가는 이시구로의 글쓰기 기법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다른 작품 『창백한 언덕 풍경』의 에츠코, 『남아 있는 나날』의 스티븐스, 『나를 보내지 마』의 케이시 역시 바로 이런 어조로 말한다. 기억의 불확실성을 활용하는 이런 독특한 방식을 통해 이시구로는 사실을 전달하는 동시에 독자의 심리적 동의를 구한다. 『우리가 고아였을 때』에서는 매력적인 상류층 사립 탐정 크리스토퍼라는 인물을 앞세워 그의 불완전한 기억과 솔직한 어투만으로 소설의 힘을 놓치지 않고 결말까지 이어 가는데, 바로 그 독특한 글쓰기가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에 빠져들게 하는 주요 요소가 된다.
한편 『우리가 고아였을 때』가 그려 낸 반전은 상당한 감정적 충격을 던지며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가디언》은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의 엔딩을 연상시킨다.”라고 평했으며, 《뉴욕 타임스》는 “이시구로는 평이한 문장과 나직하고 운율 있는 해설을 통해, 읽는 이에게 정체성과 기억의 문제를 동시에 환기시키며 그윽하고 짜릿한 경험을 선사한다.”라고 찬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