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돈을 쓴다. 지폐를 꺼내고, 화면에서 숫자를 확인하는가 하면, 잔돈 몇 개를 무심코 건넨다. 그리고 돈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 모든 익숙함 속에서, 어떤 모습 하나가 물음으로 떠오른다. “혹시 돈이 나한테 지금 말을 거는 건가?” 이 책은 이 조용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교환의 도구만이 아니라면, 단지 금속이나 종이 혹은 디지털 숫자만이 아니라면, 돈이 일종의 언어, 아니면 적어도 언어처럼 작동하는 기호의 인격체라면 어떨까?
언어는 공동체의 약속과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사과’라는 말이 해당 과일을 뜻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만 원짜리 지폐가 가치를 지닌 것도 우리 모두가 그렇게 믿기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언어와 화폐 사이에 뭔가 있기는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에서 화폐를 언어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창문을 통해 한번 바라보려고 한다. 물론, 언어학이 돈을 설명하는 데 가장 자연스러운 도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낯선 틀은 때로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게 해주기도 하는 법이다.
기호학, 인지언어학, 언어철학, 담론 분석 등 다소 무뚝뚝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독자에게 바라는 바는 크지 않다. 돈을 통해 말하는 세계의 소리에 잠시 귀 기울여보자는 것이다. 부디 이 얇은 책이 그 침묵 속의 언어를 해독하는 작은 첫 걸음이 되기를, ‘돈이 말하는 방식’을 읽을 수 있는 언어적 감수성을 키우는 불씨 정도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