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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일답 적천수
글쓴이
유기 저
출판사
문원북
출판일
2026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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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유기

명나라 건국에 크게 기여한 책사로, 자는 백온(伯溫) 호는 송암(松庵)이다.

명 태조 주원장이 원말의 혼란을 평정하고 새 왕조를 세우는 과정에서, 유기는 천문, 역법, 병법, 음양오행, 명리 등에 정통한 인물로서 전략을 맡아 조언하였다.

그의 책략은 군사 운용뿐 아니라, 천명(天命)의 해석에까지 미쳤다고 전해지며, 명나라가 건국된 뒤, 그 공으로 성의백(誠意伯)에 봉해졌다. 그러나 권세와 이익을 좇지 않고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과 저술에 힘썼다.

유기는 천인감응과 음양의 이치를 중시하며, 인간의 길흉화복이 하늘의 이치와 기운의 성쇠에 따른다고 보았다.

후대에서는 그를 한(韓)의 장량(장자방), 촉(蜀)의 제갈량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책사이자 동양 술수 사상의 대가로 평가하였고, 그 사상과 학맥은 명리· 상법· 풍수 전반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책 소개

분야종교
적천수는 중국의 3대 책사 중 한 분인 한(韓)의 장량(장자방), 촉(蜀)의 제갈량(제갈공명)과 더불어 명(明)의 유기의 저서다. 그런데 저자는 ‘경도(京圖)’이고, 유기(劉基)는 원주를 달았다, 하였다.

왜? 경도(京圖)라는 이름을 빌려야 했는지 역사적 대목이 있다. 명나라 건국 후 주원장은 개국 공신들에게 직위를 내리게 되는데 유기(劉基)는 성의백(誠意伯)이 되었다. 훗날 유기(劉基)가 왕이 나올 터에 조상의 묘지를 잡았다는 소문에, 그 말을 들은 주원장은 유기(劉基)에게 남경으로 오도록 하였다. 돌아온 유기(劉基)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고립시키고 병든 유기(劉基)에게 치료 목적으로 약을 마시게 한 후 병을 악화시켰다. 병술과 천기에 통달한 유기에게는 정적들이 많았다. 언제 모함으로 죽어 나갈지 모르는 정국에 유기(劉基)는 자신의 이름으로 비술(?術)이 적힌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만으로 위험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차명(借名)으로 책을 쓰고 자신은 주석자로 남으려고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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