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면 가끔 내 일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책 볼 때는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책 제목은 보고 싶게 하는데, 글쓰는 것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거 알고 있었는데도 조금 기대했다. 무슨 기대를 한 건지. ‘왜 쓰는가’ 첫번째 대답은 먹고 살려고다. 작가니 그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원고료 받지 못하는 글은 쓰지 않는다는 말도. 이 말 처음 보는 건 아니다. 작가는 거의 돈이 되지 않는 글은 쓰지 않을 거다. 그건 작가가 가지는 특권이겠지. 두번째 대답도 있다. 하나만 말한 건 아니다. 두번째는 제대로 살기 위해서다. 남보다 위에 있으면서 밑에 사람 피를 빨아먹지 않는 사람이다. 불편한 것을 말하고 싶다고도 했다. 이런 말을 봤지만 한창훈 소설은 단편 하난가 보고 다른 건 못 봤다. 얼마전까지 그 소설 다른 사람이 썼다고 생각했다. 소설 제목과 작가를 잘못 짝지었다고 해야겠다. 그런 일 아주 가끔 있기도 하다. 자주는 아니다. 소설 내용은 잊었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 아닌가 싶지만. 한창훈이 소설 쓴 지 스무해가 넘었는데 소설 한권 제대로 못 본 게 미안하기도 하다.

소설을 쓰는 건 어떤 사람일까. 소설 쓰는 거 하나도 몰랐는데도 쓰려고 하다니, 자신있는 사람이구나 했다. 어떤 소설가든 처음부터 소설 쓰는 걸 잘 아는 건 아니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게 소설이 된다. 이 책을 보니 한창훈한테는 하고 싶은 말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사람 이야기. 소설은 사람 이야기니까. 우리와 멀리있는 사람이 아니고 바로 곁에 있는 사람. 곁에 있다고 해서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알지 못하는 것을 쓰고 생각해야겠지.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아는 사람 이야기 쓰면 그 사람이 싫어할 것 같은데. 나는 싫다. 내 이야기를 쓸 사람 없고 쓸 만한 것도 아니지만. 내가 어렵게 여기는 게 하나 있다. 그건 글로 말할 수 없는 게 없어야 한다는 것과 삶이 담겨야 한다는 거다. 삶이 담겨야 한다는 말은 내가 좀 잘못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할 수 없는 말도 있고 하고 싶지 않은 말도 있다. 그냥 말하고 싶은 거 쓰면 될 텐데 이런저런 말에 얽매이다니.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자신이 상상한 것이라 해도 그 안에 진정성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내가 사람 안 만나고 거의 혼자 지내서일지도. 사람 잘 만나지 않고도 글 잘 쓴 사람 있을 텐데. 그런 사람 대단하구나.

거문도는 어디에 있을까. 이곳이 정약용 형 정약전이 유배된 곳인가(그곳은 흑산도가 맞구나. 거문도 다른 이름이 흑산도인가 했다). 여수를 말하는 걸 보면 남도 같은데. 한창훈은 어렸을 때 세상이 땅은 작고 바다만 펼쳐져 있다고 생각했단다. 그건 섬에서 살아서 그런 거겠지. 산에 사는 사람은 바다가 어떤지 모를지도. 그림을 그리면 파랑 크레용이 가장 먼저 닳았단다. 바다만 그려서. 나는 섬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그곳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섬을 그저 놀러가는 곳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나와 다르지 않겠지. 섬 사람은 그곳 삶이 그리 좋지 않기도 하다. 이제는 섬에서 고기를 잡고 먹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농촌이나 어촌이나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이 더 많겠지. 나는 섬에서 사는 거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은 힘들 것 같다면서 이런 말을. 아주 복잡한 건 아니지만, 내가 사는 곳이 도시여서 그렇다. 바닷가보다 산골이 나을까. 산과 바다가 다 있으면 더 좋겠다.

한창훈은 소설가보다 시인하고 친한가보다. 시인 이야기가 많다. 시인뿐 아니라 이모, 이모부, 외할머니 그리고 둘레 사람 이야기다. 여수에서 만난 거지 이야기도 있다. 거지라 해도 한창훈은 좋게 여긴 듯하다. 어느 날 거지가 사랑에 빠졌다 하니 한창훈은 그 마음을 상대한테 전하라 했다. 얼마 뒤 상대가 자기 여동생이라는 걸 알고는 다른 말을 했다. 그건 누구나 그럴지도. 한창훈이 꺼린 마음을 솔직하게 말한 것을 좋게 여겨야 할지도. 나라면 그런 마음 쓰지 않았을 거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처음부터 안 할지도. 아니 꼭 그렇지도 않다. 나도 그런 말 예전에 했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안 지금은……,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빼고, 다른 건 즐겁게 해 보라고 할 듯하다. 박영근 시인 잘 모르는데 이야기를 보니 이중섭이 생각났다. 술 좋아하는 게. 한창훈이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거의 술을 좋아한다. 시인 송기원은 술을 마시면 이상한 버릇이 나타났다. 어쩌다 그런 버릇이 생긴 걸까.

거문도, 여수, 부산 이밖에 다른 곳도 갔을 테지만, 세 곳 다 바다와 맞닿아 있다. 이야기를 보다보면 짠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어렸을 때 들은 말이 나왔다. ‘해찰하지마’다. 뜻은 딴짓하지마, 다른 데 마음 쓰지마던가. 한창훈은 사람을 좋아하고 잘 보는 듯하다. 나는 그러지 못하는데. 나는 나다.

희선

☆―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하지? 답은 바로 나왔다.

잘 쓰거나 열심히 쓰거나.

무엇을 써야 하지? 이것도 마찬가지.

좋은 것을 쓰거나 감동스러운 것을 쓰거나.

그럼 됐다.

좋고 감동스러운 것을 열심히, 잘 쓰면 되겠구나. (162쪽)

일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말. 견디는 자세가 아픔을 더 크게 보여주듯이,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는 자의 얼굴이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내듯이, 언어는 냉정하게 정돈된 거라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1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