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책이다. IS 취재를 위해 무슬림 10대 소녀로 위장해 IS조직원과 접촉한 여기자 안나 에렐(가명)의 르포이다. 용감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취재가 종료된 지금도 그녀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내 친오빠는 미셸 오디아르가 한 유명한 대사를 즐겨 읊곤 했다. 그것은 바로 "앉아 있는 두 지식인이 항상 걷고 있는 지식이 없는 사람보다 멀리 가지 못한다"였다. (111쪽)

IS의 꾐에 빠져 국경을 넘었던 10대들 중 탈출에 성공한 소녀들을 취재하던 안나는, 직접 IS를 취재하기 위해 '멜로디'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다. 가정에도 사회에도 섞이지 못하는 10대 소녀로의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다에시의 선전물을 자신의 SNS에 포스팅하고, 조직원과 채팅으로 접촉한다. (프랑스에서는 IS를 아랍어로 '다에시'라 부른다. '국가'가 아닌데 Islamic 'State'라 부를 이유가 없다는 이유다.)

페이스북에서 알게된 빌렐이라는 다에시 조직원은 멜로디를 달콤한 말로 유혹한다. 국경을 넘어 이곳에 오면 공주처럼 지낼 수 있다, 사랑한다, 결혼하자,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주겠다는 등..

"그렇지만 나는 내 가족과 등짐면서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 내 느낌인데, 너도 당연히 자본주의자겠지?"

멜로디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자본주의가 뭐지? 그리고 그게 가족과 무슨 상관이지? 멜로디는 빌렐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 후에 빌렐은 그녀에게 신이 정한 율법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샤리아, 즉 이슬람 율법은 소수의 나라에서만 적용된다.) 그리고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소비주의 사회에 등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빌렐은 단호했다. 멜로디는 자신이 사는 국가의 법에 순응하면 안 된다. 샤리아가 아닌 지금까지 멜로디가 살아왔던 나라의 법은 급진적인 이슬람교의 모습을 띠기 때문이다. 빌렐이 신봉하는 것은 '순수한' 이슬람교다. (43쪽)

저자는 낮에는 기자 안나로서 취재를 하고, 저녁이 되면 히잡을 쓰고 멜로디가 되어 빌렐과 스카이프 화상채팅을 한다. 입만 열면 사랑고백을 하고,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고, 국경을 넘어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유혹하는 빌렐이 위험한 존재임을 알고 있는데도, 그녀는 점점 자신이 안나인지 멜로디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빌렐의 연락이 없으면 내심 걱정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만류에도, 안나는 빌렐이 가르쳐 주는 대로 프랑스를 떠나 IS에 합류하는 경로를 취재한다는 명분으로 여행을 떠난다.

책을 읽으면서, 다에시 조직원들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과 사탕발림, 이중적인 모습이 역겨웠다. 예를 들면, 멜로디가 빌렐을 만나러 가겠다고 결정하자 빌렐은 '숫처녀인지'를 묻는다. 순수한 이슬람국가를 만들기 위함이라면서도 아내로는 아랍 여성보다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서양소녀들을 선호한다. 남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나. 멜로디가 오기만 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사주겠다고 하면서 정작 국경을 넘기 전에는 자신을 위한 향수와 면바지를 사오라고 하는 모습은 우습기까지 하다.

대체 얼마나 외로웠기에, 얼마나 고립되었기에, 그런 뻔한 사탕발림에 넘어가 부모카드를 훔쳐 떠났는지. 왜 소녀들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게다가 안나 자신도 달콤한 말에 마음이 흔들릴 뻔 하지 않았던가. 한편으론, 그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몬 사회 구조가 안타까웠다. 안나가 비정규 취재기자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특종을 내지 않으면 기자로서의 삶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과연 가족과 친구들을 뒤로한 채 목숨 걸고 다에시와 접촉해 결국 테러대상으로 지목되는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그들이 접촉을 시도했던 것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음을 나는 지금에 와서야 알았다. 그들 역시 외로움을 덜고자 했던 것이다. 여느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초보 지하디스트들도 SMS로 대화를 했고, 이 나이대를 위해 문자를 무제한으로 보낼 수 있는 요금제도 생겼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언어와 문화가 있다. 그들 나이에는 누구나 자발적으로 전자기술을 터득한다. 빌렐은 그들의 "큰형님" 세대에 속하며, 그는 자신이 추구하던 바를 종교에서 찾았다고 한다. (98쪽)

미디어를 통해 그려지는 IS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곳에 합류하는 사람들은 절대악, 사이코패스,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여겨왔던 것 같다. 물론 눈 깜빡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악인도 있지만, 단지 외로워서 합류한 사람도 있고, 막상 가보니 자신이 아는 이슬람과 달라 빠져나오고 싶지만 보복이 두려워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내 종교적 신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프랑스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단지 내가 믿는 규율에 따라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아부 무스타파는 빌렐과 달랐다. 그 역시 가족과 주변 사람을 잃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그는 이슬람 종교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 그리고 이와 상반되는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조직인 다에시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리고 만약 그가 프랑스로 돌아간다면 그는 조직의 손에 파멸당할 것이다. (145쪽)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니 속이 메스껍고 현기증이 났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무엇부터 고쳐야 할까.

다에시는 이슬람 한 종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곪은 부분이 종교라는 가면을 쓰고 터져 나온 것이다. 이런 사회 현상들은 단지 프랑스, 유럽 국가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머지않아 한국 사회에도 어떤 형태로든 표출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욱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