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구호 뒤에 존재하는, 살아 숨 쉬는 노동의 맨얼굴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의 노동지도는 크게 달라졌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해고자들이 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그러나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넘기고 사정이 나아져도 고용을 전과 같이 늘리지 않았다. 남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법원은 해석했다. 이제 노동자는 아직 닥치지 않은 위기 앞에서도 해고될 수 있다. 지난 15년간 진행된 ‘노동 유연화’의 실상이다.
사람을 ‘쉽게 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사회,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들 뿐 아니라 나쁜 일자리마저 ‘갑질’ 앞에 무릎을 꿇고 지켜야 하는 사회, 이것이 한국의 평범한 일상이다. 경쟁과 도태에 익숙해진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삶을 옥죄는 막연한 불안에 일상적으로 영혼을 잠식당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이런 곪은 상처를 표피적으로 관리하려고만 해왔을 뿐, 정작 당사자 처지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는 일은 도외시해왔다. 환부를 직시하고 정밀하게 진단해야 가장 유효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문제를 살피고, 그곳에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정책과 통계치, 구호와 숫자 뒤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 비로소 사회문제는 삶의 문제로 바로 설 수 있다. 《노동여지도》는 바로 그런 얼굴들, 오늘 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맨얼굴을 찾아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