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접하기 전에 내가 아는 마리-앙투아네트는 좋지 않은 이미지로 있었다. 살면서 본 영화나 짧게 스쳐 간 이미지가 대부분이 사치와 유흥을 즐긴 왕비로,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기일 수 있는 배고픈 민중에게 했다는 "빵이 없으면 케잌" 이라는 말이 크게 각인 되었던 것일 게다.

역사란 쓰이는 시대의 것, 쓰는 자의 것이고 특히, 앙투아네트의 경우 특별히 그녀를 거쳐 간 이들(시녀 미용사 감시병 등)은 1815년 이후 회상록이 붐을 일었을 때 냄새를 맡고 온 직업 문필가와 출판업자들에게 단편적인 기억을 주었고 이들의 재미없는 기억을 감상적인 허구와 달콤함을 버무려 이들 이름과 함께 책을 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츠바이크는 이 책 마리 앙투아네트 전기는 지금까지 어느 책에서나 당연하게 이용되어 오는 앙투아네트의 기록, 편지, 대화에 별 가치를 두지 않고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대제)와 오간 편지와 마지막까지 앙투아네트 곁에서 지켜준 페르센(스웨덴 귀족)이란 인물의 후손이 공개한 문서를 이용했다고 한다. (저자 후기 중 일부)

책은 위와 같은 이유로, 그래서 중요하게 여기는 두 사람과의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를 통해, 더 과장할 필요도, 치켜세울 필요도 없이 지극인 인간적인 앙투아네트를 따라가고 있다. 제대로 읽어 본 책 한 권 없고 글쓰기는 더욱더 하지 않으며 감각적이고 놀이만 좋아하는 딸을 훈계하는 어머니가 있고, 그런 어머니의 충고에도 오로지 놀고 즐기고 발랄하기만 한, 그러나 뛰어난 미모에 묘한 마력의 딸 앙투아네트가 있다. 우유 부단하고 말과 행동에서 전혀 왕이라고 부를 수 없는 남편 루이 16세가 있는 반면에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서로에게 끌리는 숨겨진 애인 페로센이 있다.

마리-앙투아네트는 왕권을 지키는 성녀도, 혁명 자들이 일컫는 매춘부도 아니었고, 영리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았으며, 좋으면 즐기고 싫은 건 하기 싫었고, 선을 베풀 힘도 없을뿐더러 악을 행할 의사 또한 없는,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여인일 뿐이었다. (저자 서문 중 일부) 시민의식의 변화에 따른 역사 흐름 한가운데 서서 평범하기 짝이 없이 나약하게 역사의 비정을 맞이한 여인이었다. 차라리 그녀가 역사 앞에 버티고 서서 발악하고 왕권주의 영웅에 걸맞은 작은 행위라도 했더라면 우리가 기억하는 이 여인의 비극은 반감되어 어쩌면 우리는 그녀를 기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철저히 무심한 왕가의 여자로 살아오다 혁명의 역사, 혁명의 시련을 겪으며 서서히 자신도 진짜 마리-앙투아네트를 알아가며 단두대에 서기 직전에야 왕비로서의 면모를 갖게 된 여인.

묘한 끌림의 마성을 지닌 마리-앙투아네트.

갇힌 감옥을 지키는 감시병도, 저자 츠바이크도, 읽는 나도 이 묘한 마성에 빠져들어 탈출을 도와주려 했고, 문장이 사랑스러워졌고,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단두대의 이슬로 기억되는 왕비 마리-앙투아네트.

<스테판 츠바이크>는 그 만이 가진 문장의 마성력으로 여자, 사람, [마리-앙투아네트]를 그려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