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문체부는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정책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오직 한 줌으로 남은 독서 인구를 보호종으로 지정,
그들의 존재를 보전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이었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독서 인구’를 보전하기 위한 국가적 사업 속,
단 하루의 도서 연체가 불러온 정신없이 유쾌한 탈출기!
편식 독서, 병렬 독서 등 최신 독서 문화와 줄어든 독서 인구에 대한 자조, 그리고 온갖 문학 밈(meme)을 결합해 오늘날 독서계의 풍경을 블랙 코미디로 그려낸 「도서 연체의 말로」가 구구단편서가ONE 시리즈로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곶자왈에서』와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두 번째 밤』 등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하며 도발적 상상력을 선보이고 있는 유아인 작가의 신작으로,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부상한 ‘텍스트 힙’ 열풍과 함께 탄생한 최신 독서 문화를 현장감 넘치게 담아낸 작품이다. 한국의 낮은 독서율을 타개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독서 인구를 ‘멸종 위기 보호종’으로 지정했다는 발칙한 설정을 전제로, 단 하루 책을 연체했다는 이유로 끌려간 주인공의 사투가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고전부터 장르문학까지 아우르는
독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즐길 수밖에 없는 본격 ‘독자 헌정’ 소설
이 작품의 가장 큰 묘미는 곳곳에 배치된 반가운 소설들의 제목과 인용구다. 작중에서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와 같은 인문학 서적부터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물론, 『살육에 이르는 병』과 한국 판타지의 고전 『드래곤 라자』까지 종횡무진 호출된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작가가 보내는 신호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독서와 멀어졌던 이들이라면 과거 사랑했던 책들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본격 ‘독자 헌정’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작가는 편식 독서나 병렬 독서 같은 최신 독서 문화의 단면을 현장감 있게 담아내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공감대를 형성한다.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주변에 놀림을 받거나 독서에 몰두하느라 체력이 허약해졌다는 등의 깨알 같은 웃음 포인트는 물론이고, ‘자신이 직접 쓴 책을 비치해 달라’는 등의 기이한 민원에 시달리는 사서들의 애환까지 묘사되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 봤거나 상상해 봤을 경험들을 녹여 낸다. 또한 권말에 수록된 리뷰는 이 화려한 텍스트의 향연을 즐기는 경험을 나누며, ‘함께 읽는 독서’의 경험을 완성한다.
입사 첫날, 독서가 취미라는 나의 말에 이죽거리던 동료들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갔다.
‘저것 봐, 유식한 신입이 납셨군. 요즘 젊은이라면 응당 주식이나 운동 따위에 빠질 것이지 건방지게 그 시간에 책을 읽어? 아주 대단한 지식인이 아닌가! 어이, 앞으로 박사라고 불러 드릴까? 책책박사 박 박사!’
나의 ‘존맛’이라는 한 마디에 그런 상스러운 줄임말을 입에 담아도 되냐며 비꼬던 팀장님, 회사 내 동아리 중에 독서 동아리는 없다며 v힙쟁이v동아리(손가락으로 쌍따옴표를 만들며) 하나 개설하라며 비웃던 동료들, 심지어 회식 때 양고기 잘 굽는 법 같은 건 책에 나오지 않는 모양이라며 대놓고 꼽을 줬던 부장님의 얼굴이 순서대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결국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독서가 취미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한 농담일 뿐이었으며 진짜 취미는 넷플릭스 목록을 뒤적거리는 것이라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동료들은 나를 정식 일원으로 받아 주었고 나를 향한 갖가지 딴지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짜릿한 비밀 사내 연애를 즐기고 있는 몇몇 커플을 피해 매일 비상계단에서 책을 몰래 읽는 수모를 감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말처럼 공문에 적힌 ‘독서’라는 단어를 본 동료들의 태도가 어떻겠는가. 마치 살충제를 맞은 날파리같이 허겁지겁 흩어져 나에 대한 안부 따위는 처리된 연말정산처럼 감쪽같이 잊힐 것이 분명했다._본문 중에서
줄거리
여느 날과 같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주인공은, 별안간 암흑 속에서 깨어난다. 곧이어 곰인형, 인형의 집, 보냉백과 같은 심상치 않은 탈을 쓴 사람들이 주인공을 에워싼다. 그들은 도서관의 도서를 단 하루 연체했다는 죄를 물으며, ‘멸종위기종’이나 다름없는 독서 인구인 주인공을 보호하고 계도하기 위한 특별한 정책을 집행하겠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