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에서 꺼낸 시간의 조각들과 무수한 1인칭들
“간결한 구도와 건조한 문체로 고독과 절망으로 일그러진 우리 시대의 기이한 자화상”(이혜원)을 그려낸다는 평가와 함께 2000년대 젊은 시인들 가운데서 단연 최소화한 언어와 견고한 구조의 시 세계로 주목받은 바 있는 신해욱이 첫 시집 『간결한 배치』(2005) 이후 4년 만에 두번째 시집 『생물성』(문학과지성사, 2009)을 펴냈다.
첫 시집이 지극히 건조하고 단정한 언어로 인간과 세계의 관계, 사물의 안팎을 묘사하고 분석하여 세계와 풍경의 선명한 이미지의 연쇄를 낳았다면, 이번 시집에서 신해욱은 말하는 ‘나-자신’에게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리고 분열된 ‘나’와 온전한 ‘나’ 사이의 간극, 매일 아침 변신을 거듭하는 순간의 ‘나’를 빠짐없이 기록하기 위해 독특한 “1인칭의 변신술”을 감행하고, “늘 부족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선택한다. 1부과 2부로 나뉜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몇 번씩 얼굴을 바꾸며/ 내가 속한 시간과/ 나를 벗어난 시간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제와 조금씩 다른 모습, 다른 속도로 기우는 ‘나,’ “피와 살을 가진 생물처럼./실감나게” 말하고 싶은 ‘나’에 대한, 혹은 ‘나와는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평소에는 ‘당신의 나’ 혹은 ‘그들의 나’로 불리다가 문득 오롯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에 오히려 “어색”해지고 마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이목구비는 대부분의 시간을 제멋대로 존재하다가
오늘은 나를 위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렇지만 나는 정돈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나는 내가 되어가고
나는 나를
좋아하고 싶어지지만
이런 어색한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축, 생일」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