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신 시인의 시집은 세계를 하나의 방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인상주의적 장면들로 감각이 돋보이는 시편들과 구체적 삶의 결을 밀도 있게 끌어안는 시편들이 함께한다. “허공을 줄타기하며 / 보이지 않는 곳에 붉은 꽃 피우려”라는 구절이 사물의 이면을 향한 감각의 비약을 보여준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일상의 고단함과 관계의 무게가 더 직접적인 일상어로 호출된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한 것처럼, ‘불꽃’은 사유 이전에 감각을 뒤흔든다. 이 시집의 ‘초록 불꽃’ 역시 그러한 순간들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삶의 구체 속에서 타오르는 현실의 열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빛과 같은 외로움 / 생애를 다 차올라 / 환한 꽃잎들”이라는 구절이 보여주듯, 이 불꽃은 내면에서 번져나오는 파토스이자, 세계와 맞닿은 자리에서 생겨나는 열정이다. 때로는 이미지와 리듬으로, 때로는 삶의 직조된 언어를 받아들이며, 독자는 이해 이전에 흔들리는 순간과 이해에 이르러 멈춰 서는 순간을 함께 통과하게 된다. ?이영철(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