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 리스트
  • 구매
님의 침묵
글쓴이
한용운 저
출판사
범우사
출판일
2015년 6월 13일
  • 읽고있어요

  • 다 읽었어요

  • 읽고싶어요


저자

이미지

한용운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백담사 등지를 전전하였고, 이때를 전후해서 세계여행을 계획하였다.

1894년 동학군에 가담하여 투쟁하다 실패했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 수년 간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근대적 교양서적을 읽어 서양의 근대사상을 접했다. 1904년(26세)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목하니 노릇을 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7세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서 득도. 백담사에서 전영제사全泳濟師에 의하여 수계受戒. 백담사에서 이학암사李鶴庵師에게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수료. 29세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선안거(최초의 禪수업)를 성취하였다.

30세 강원도 유점사에서 서월화사徐月華師에게 『화엄경』을 수학하였고 4월, 일본의 시모노세키, 교토, 도쿄, 닛고 등지를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였다. 도쿄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였으며, 10월, 건봉사 이학암사에서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하였다. 31세에 강원도 표훈사 불교 강사에 취임하였고 1910년(32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1년(33세) 박한·진진웅·김종래·장금봉 등과 순천 송광사, 동래 범어사에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 조약 체결을 분쇄하였다. 1913년(35세)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하였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발행하였다.

1914년(36세) 『불교대전』을 범어사에서 발행하고 1917년(39세) 『정선강의 채근담』을 신문관에서 발행하였고 항일 투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2월 3일 밤 10시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정돈석擬情頓釋이 되어 진리를 깨치고, 오도송을 남겼다. 1918년 청년계몽운동지 [유심]지를 창간했다. 1919년(41세) 3.1운동을 주도,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고 공약삼장을 첨가하였다. 1923(45세)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지원하는 강연을 하였다.1924년 불교청년회 회장, 총재를 역임하였다.

1925년(47세)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하엿다. 1927년(49세) 1월 신간회를 발기하였으며, 5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에 뽑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931년(53세) 월간 [불교]지를 인수하였고 청년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53세) 조선불교 대표인물 투표에서 최고득점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한용운 422표, 방한암 18표, 박한영 13표, 김태흡 8표, 이혼성 6표, 백용성 4표, 송종헌 3표, 백성욱 3표, 3표 이하는 생략. 불교지 93호에 발표됨). 1933(54세) 유숙원씨와 재혼하였고, 이때를 전후하여 『유마힐소설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벽산 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몇 분의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지었으며, 이때 총독부 돌집을 마주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짓도록 하였다.

1940년(62세) 『불교』지 2월호에 『유마힐소설경』 연재를 시작하였고, 1943년(65세)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였다. 1944년(66세) 6.29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입적하였으며 유해는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용운은 불자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민중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1운동에 가담하고 독립선언서를 공개하여 낭독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는데, 기존의 시조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를 취했으며,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는 언어와 서민적인 시어 활용으로 민중정신을 반영했다. 독립을 향한 열망, 자연 등을 ‘님’으로 표현했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화법으로 검열을 피하기도 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일제하 독립운동가요 승려였던 만해 한용운의 시 90편 수록~!

만해 한용운의 시에 있어서 ‘님’, 또는 ‘당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님의 침묵》은 88편의 작품으로 엮어져 1925년에 출간된 시집이다. 그 88편의 작품 중 ‘님’, ‘당신’이라는 시어가 들어 있는 작품은 모두 64편이나 된다. 이러한 님(당신과 같음)의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명은 쉽지 않은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각기 조금씩 다르게 님의 존재를 밝혔는데 그것을 살펴보면 대충 다음과 같다.

(1) 첫째, 그의 님은 바로 일제에 빼앗긴 조국이었다. 또 민족의 정기라고도 했다. 만해의 님은 중생의 마음을 뜻하므로 ‘조국과 민족’이 그 실체라 했다. (2) 둘째,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을 그의 대표적인 님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그의 내면정신과 추구의 세계로 보아 불교적 진리가 힘있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님이라 했으며, 열반의 경지에 들게 하는 ‘참다운’, 즉 ‘무아(無我: anatman)’라고 했다. (3) 셋째, 첫째와 둘째의 견해를 결합하여 복합적인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4) 넷째, 만해 한용운의 님은 생명적 근원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조국이 존재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사랑, 희망, 이상을 두루 상징하는 말이라고도 보았다. 또는 시인 자신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생명적 내지는 정신적 지주가 바로 님이며, 조국, 민족 또는 불타와 중생은 그와 같은 님의 의미 영역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만해 시의 님에 많은 의미를 대입(代入)할 수 있다. [님의 침묵]과 같은 시에서는 관능적인 시어로 보아 그것은 분명 사랑하는 애인이다. 그러나 [알 수 없어요]와 같은 작품에서 보면 그것은 자연일 수도, 불타 또는 절대자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신을 보았습니다]와 같은 작품에서는 잃어버린 조국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무난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님의 정체는 만해의 진선미(眞善美)를 구도(求道)하려는 정신적 구원의 지주(支柱)를 인격화한 것이다.


전체 리뷰 (0)
최근 작성 순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