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릴케 사후 100주기,
릴케의 세계에 빠져들 시간
인간 실존의 탐구자 릴케가
생의 종말을 앞두고 완성한 최후의 대작
죽음을 숙고하며 삶의 의미를 확장하는 예술의 숨결
20세기를 대표하는 고독과 방랑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가 릴케 사후 100주기를 맞아 민음사 세계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릴케는 생애 마지막 5년의 대부분을 보낸 스위스 시에르의 뮈조성에서 폭풍처럼 불어닥친 영감에 힘입어 단 20여 일 만에 연작시집을 써낸다. 『두이노의 비가』와 함께 릴케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다. 릴케 연구로 이름 높은 독문학자 김재혁 교수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소네트 고유의 음악성을 느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 번역을 선보인다. 거의 매년의 행적을 담은 상세한 연보는 시인의 일생을 생생하게 재구성하도록 돕는다.
모든 이별에 앞서 가라, 막 지나가는 겨울처럼,
이별이 네 뒤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라.
많은 겨울 중에 하나는 끝없는 겨울이라,
겨울 나며, 네 심장은 견뎌내야 하리라.
늘 에우리디케 안에 죽어 있어라, 노래하며,
더 찬양하며 순수한 연관 속으로 돌아가라.
이곳, 사라지는 것들 속에, 쇠락의 영역에 있어라,
깨지며 울리는 유리잔이 되어라.
존재하라?동시에 비존재의 조건을 알라,
너의 깊은 흔들림의 무한한 이유를 알라,
너는 그것을 단 한 번에 완성하리라.
―2부 열세 번째 소네트에서
1부 26편과 2부 29편, 총 55편의 소네트에서 릴케의 주된 관심사는 삶과 죽음의 공동관계다. 그는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통일체임을 문학적으로 성찰한다. 죽음이 삶의 종말이나 삶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삶과 죽음을 지니고 있다. 가령 과일을 맛보는 행위는 인간에게 삶의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면서 과일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 과일의 맛에서 지상의 환희와 지하의 기운을 동시에 체험하는 순간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창조가 생겨난다. 죽음의 세계를 수용할 때 비로소 삶의 진정한 의미와 전일적인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잘 익은 둥근 사과, 배 그리고 바나나,
구스베리… 이것들은 입안으로
삶과 죽음을 말한다… 나는 느낀다…
이것들을 맛보는 아이의 얼굴에서
읽어라. 멀리서 온 것이다. 입안에서
말할 수 없이, 느리게 일어나는가?
전에 말이 있었던 곳에는 과육에서
놀랍게 풀려난 보물이 흐른다.
말해보라, 너희가 사과라고 부르는 것을.
이 단맛, 처음엔 빽빽하지만
맛보는 동안 서서히 일어나서는
맑아지고 깨어 있는 투명한 그 맛,
두 가지 뜻을 지닌, 태양과 흙과 이 세상의 맛?
오 체험이여, 느낌이여, 기쁨이여?, 대단하다!
―1부 열세 번째 소네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