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장면이 품고 있는 침묵에 귀를 기울이고
길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른 차원의 감각이 열리는 詩
송삼용의 시는 눈과 바다, 참나무와 감나무, ‘덴마’라는 작은 배와 미역귀, 리어카와 장독대, 초인종과 지하철 같은 구체적 대상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시편들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풍경의 제시나 대상의 묘사에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사물을 오래 바라보고, 장면을 충분히 견디며, 그로부터 서둘러 의미를 추출하기보다 그 사물과 장면이 품고 있는 침묵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송삼용의 시에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 정보보다 ‘그 일이 지나간 뒤 무엇이 남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 이 지워진 자리에 남는 것이 고요가 아닌가 한다.
표제작 「눈이 길을 지우는 방식」은 이 시집 전체를 이해하는 하나의 관문이다. 시인은 “밤새 세상은/ 말을 지웠다”고 적는다. 눈이 지우는 것은 길만이 아니다. 길은 인간이 이동의 방향을 새겨 놓은 자취이고, 말은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고 질서화하기 위해 마련한 통로이다. 그런데 시인은 눈 내리는 세계를 통해 그 길과 말을 함께 지워 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향 감각과 의미 감각이 동시에 중단되는 순간이다. 말이 멈추고 길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다른 차원의 감각이 열린다. 송삼용은 바로 그 자리, 인간의 언어와 습관이 잠시 무력해지는 자리에서 고요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