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KDI에서 연구하던 시기부터 국제자본 이동과 금융위기의 메커니즘, 신흥국 금융불안정의 구조적 원인에 대해 탐구해 왔으며, 1997년 금융개혁위원회 참여를 통해 제도 개혁의 현실적 제약과 정치경제적 맥락을 경험하였다. 이후 다시 대학을 잠시 떠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이론과 실증연구에서 다루었던 문제들이 실제 정책 판단의 형태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취임 당시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자 미 연준 이사를 지낸 컬럼비아대학교의 프레데릭 미시킨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한국과 같은 신흥경제에서의 통화정책 운용은 미국에서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마음을 가다듬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충격이 실물경제와 금융시스템으로 전이되는 속도와 강도, 그리고 정책 대응의 시차와 제약은 연구자의 시각에서 상정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연구와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개방경제의 금융 취약성을 중앙은행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한 분석 틀을 정리한다. 특히 신흥국 중앙은행의 시각에서 금융사이클과 실물사이클의 상호작용, 글로벌 금융사이클의 파급경로, 금융안정을 고려한 통화정책 운용, 그리고 미시건전성 규제를 넘어서는 거시건전성 정책의 필요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여기서 중앙은행은 단순한 통화정책의 운영자를 넘어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식별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행위자로서 기능해야 함을 강조한다.
아울러 이 책은 한국의 경험을 단순한 특수 사례로 한정하지 않는다. 한국은 급속한 금융자유화, 대규모 자본유출입, 반복된 금융위기, 그리고 거시건전성 정책의 선제적 도입을 모두 경험한 대표적인 개방 신흥경제로서, 그 정책적 시행착오와 제도적 진화 과정은 다른 신흥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의 사례는 금융안정 정책체계가 단기간에 설계·도입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위기와 학습의 축적을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정책 프레임워크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책은 중앙은행이 모든 금융안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에 서지 않는다. 오히려 개방경제에서의 금융안정은 통화정책, 거시건전성 정책, 외환정책, 재정정책, 그리고 국제금융체제의 제도적 환경이 상호작용한 결과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중앙은행의 역할 또한 다른 정책 주체 및 국제금융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한국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되, 이를 글로벌 금융시스템과 신흥국 일반의 문제로 확장하여 해석한다. 이는 특정 시기의 정책 평가를 넘어, 향후 반복될 수 있는 글로벌 금융환경 변화 속에서 중앙은행이 어떠한 정책체계와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