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은 사람은 무엇으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은 한 남자의 회복담처럼 시작하지만, 다시 읽으면 훨씬 더 낯선 질문을 드러낸다. 머릿속에서 사라진 기억은 책장, 만화, 노래, 오래된 표지, 전쟁기의 이미지 속에 흩어져 있고, 그 사물들은 그가 누구였는지 말해 주는 듯하면서도 끝내 완전한 답을 주지 않는다.
이 책은 얌보의 기억상실을 단순한 심리적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책과 이미지가 한 삶을 대신 보관하는 방식, 대중문화의 파편이 개인의 내면을 구성하는 방식, 향수처럼 보이는 장면 속에 시대의 언어와 폭력이 남는 방식을 차근차근 읽는다. 그래서 독자는 과거가 돌아오는 장면보다 과거가 어떤 매체의 형식으로 조립되는지 보게 된다.
기억, 이미지, 책, 정체성, 저장, 망각, 불완전한 회복이라는 키워드로 에코의 소설을 다시 펼치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좋은 입구가 된다. 결말을 안 뒤에야 보이는 잔광을 따라가면, 오래된 표지는 더 이상 추억의 장식이 아니라 한 인간을 대신 기억하는 아카이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