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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사이렌이 멈춘 뒤에 보이는 삶의 무늬
글쓴이
장형순 저
출판사
부크크
출판일
2026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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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분야인물사전
뜨거웠던 불꽃은 꺼져도, 사람의 온기는 남기를
2024년의 어느 퇴임식 날, 평생의 살붙이 같던 제복을 벗으며 나는 잠시 눈을 감고 35년 전의 나를 만났다.

1989년 4월 26일 마포소방서. 그날의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고, 처음 내 손에 쥐어진 출동복은 생각보다 얇고 가벼웠지만, 그것을 몸에 걸치는 순간 느껴지는 책임감은 무엇보다 무거웠다. 지하 식당에서 의자 끄는 소리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던 신출내기 소방관 장형순에게 세상의 모든 불길은 공포이자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때의 나는 미처 몰랐다. 그 낡은 방화복이 내 평생의 자부심이 될 줄은, 연기 자욱한 길바닥에서 들이킨, 식어버린 컵라면 국물이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위로가 될 줄은 말이다.

현장은 감정이 아니라 직관으로 움직인다.
현장은 언제나 냉혹했다. 특수구조대와 산악구조대를 거치며 숱한 생사의 갈림길을 목격했다. 참혹한 현장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무력감은 때로 불길보다 더 깊게 마음을 할퀴었다. 하지만 나는 배웠다. 불길이 뜨거울수록 지휘관의 머리는 차가워져야 한다는 것을. 0.1초의 망설임이 생사를 가르는 순간, 리더를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이론이 아니라 수천 번의 현장에서 체득한 ‘직관’과 상황에 따라 고집을 꺾을 줄 아는 ‘유연함’이었다.
동료의 얼굴에 묻은 검댕을 보며 씩 웃어주는 투박한 농담 한마디는 단순한 여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참혹한 현장에 잡아먹히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숨구멍’이자, 가장 인간적인 생존 전략이었다.

소방관이 안전해야 시민이 안전하다.
시간이 흘러 예산과 안전보건을 책임지는 행정 업무를 맡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소명의 마침표를 찍을 기회를 얻었다. 사람들은 소방관을 ‘영웅’이라 부르지만, 내 눈에 비친 동료들은 영웅이기 전에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고 부모였으며, 그들도 결국 ‘사람’이었다.

2001년 홍제동의 비극은 내게 소방관도 결국 ‘보호받아야 할 사람’임을 처절하게 각인시켰다. 연기 속으로 사라진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영웅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소방관의 고단함을 이제는 국가가 보살펴야 한다고. 제대로 된 장비와 충분한 휴식이 사치가 아니라, 다음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결심은 나를 때로는 현장의 귀신으로, 때로는 시청 복도의 불도저로 만들었다.

동료들이 찬 바닥에서 쉬지 않도록 ‘회복 차량’을 기획하고, 먼저 떠난 이들의 명예를 위해 ‘순직자 예우 조례’를 다듬었으며, 대원들의 장비를 개선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대원들이 제대로 쉴 수 있는 한 뼘의 공간이 확보될 때 비로소 다음 사선으로 뛰어들 용기가 채워진다는 것, 그리고 ‘소방관이 안전해야 시민이 안전하다’라는 투박한 진리가 우리 조직의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보내는 간절한 감사 편지
이제 나는 마포의 풋내기 소방관에서 광진의 서장으로, 그리고 다시 평범한 시민 장형순으로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언제나 ‘소리’와 함께였다. 서울의 정적을 깨는 다급한 ‘출동 벨 소리’, 무너진 잔해 속에서 동료의 숨소리를 찾기 위해 ‘숨을 죽이던 정적’ 그리고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시장실 문을 두드리던 나의 거친 숨소리까지….

이 책은 단순히 내가 불을 끈 기록이 아니다. 사선에서 어깨를 맞댔던 동료들에게 보내는 뒤늦은 감사 편지이자, 지금 순간에도 검은 연기 속으로 뛰어드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간절한 약속이다.“우리가 닦아놓은 이 길 위에서, 부디 그대들은 조금 더 안전하기를….”

내 인생의 가장 뜨거웠던 장면들을 이곳에 펼쳐 놓는다.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불씨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잊고 지낸 동료애를 일깨우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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