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생존 코드에서 인간의 권력과 상징으로 변용된 '색채'라는 프리즘을 통해 동유라시아 문명과 물질문화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했다.
자연계에서 ‘생존과 번식의 코드’로서 기능하던 색은 인간 사회에서 ‘권력과 상징의 코드’로 변용되어 작동한다. 자연계의 생존 전략의 코드로서 색이 발달하였다면, 인간 사회에서는 색이 사회적 관계 맺기와 권력 구조 형성의 핵심 장치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는 자연계의 색이 생물학적 법칙에 따라 규정된 것이라면, 인간 사회의 색은 문화적 규약과 사회적 합의에 따라 구성된 것이라는 본질적 차이를 의미한다. 역사학의 시야에서 색을 탐구한다는 것은 이러한 인간적 의미 부여 과정과 그 변화의 역사를 복원하고 분석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색을 둘러싼 사회적 질서, 경제적 교환, 정치적 상징화, 문화적 기억의 형성과 변용을 추적하는 작업은 궁극적으로 물품을 통한 동유라시아 세계를 파악하려는 본 연구단이 지향하는 목표와도 직결된다.
본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색채라는 프리즘을 통해 동유라시아 문명과 문화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다양한 지역과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색채의 의미와 기능을 탐구한 9편의 논문을 ‘경제와 사회’, ‘권력과 전쟁’이라는 두 가지 주제 축에 따라 재배열하였다. 이러한 협업적 연구를 통해 우리는 색채가 매개하는 물질문화의 교류와 변용, 그리고 그 속에 내재된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의미의 역동적 변화를 포착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