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공을, 언어를, 커리어를, 관계를, 살아온 도시들을 하나씩 돌아보았다. 그때마다 등장한 것은 장자였고, 벤야민이었고, 키츠였고, 벌린이었고, 카슨이었다.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학문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성급한 확정보다 더 정직한 자리가 있다는 것. 그 자리는 결핍이 아니라 하나의 감수성이라는 것.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애매함을 예찬하는 책이 아니다. 애매함을 넘어서는 책이다. 다만 그 넘어섬은, 애매함을 서둘러 지우고 확실함으로 건너가는 방식이 아니다. 애매함을 충분히 통과하고 나서야 도달하는, 조금 더 넓어진 시야를 향한 넘어섬이다. 여우와 고슴도치 중 하나가 되기를 그만두고, 조간대의 생물들처럼 그 경계 자체에서 사는 법을 익히는 것. 모자이크의 조각들 사이 틈을 메우려 하지 않고, 그 틈으로 드는 빛을 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