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 공사장에서 두꺼운 아스팔트를 한 꺼풀 걷어내자, 그 아래에서 수백 년 전 사람들이 짚신을 신고 밟고 지나던 조선의 옛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날마다 오가는 길 밑에는 이렇게 다른 시대의 길이 켜켜이 포개져 있다. 길에도 나이테 같은 지층이 있는 셈이다.
이 책은 그 지층을 한 켜씩 더듬어 우리 역사를 다시 읽는다. 왕조의 흥망이나 영웅의 무용담 대신, 사람들이 실제로 밟고 다닌 길을 따라간다. 조선의 6대로와 역참·마패에서 시작해, 개항기의 신작로와 경인선 철도, 경부고속도로와 마이카 시대의 도시 팽창, 그리고 KTX와 GTX, 자율주행에 이르기까지. 길의 모양과 속도가 바뀔 때마다 그 위를 흐르던 권력과 경제와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짚는다.
흙길에서 GTX까지, 한 줄기로 굽이굽이 이어져 온 길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말한다. 어떤 길이 났는가를 보면, 그 시대가 보인다. 교통과 도시를 오래 연구해 온 저자가 길이라는 렌즈로 풀어낸 또 하나의 한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