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살의 노처녀 릴리는 램지 가의 여름 별장에 초대된 사람들 한켠에서 쉽게 완성되지 않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캔버스에는 가부장 사회가 요구하는 ‘집안의 천사’인 램지 부인이 있다. 누구든지 사랑하고 축복하고 싶어하는 그녀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들 가운데 녹아들고, 그들을 충만하게 해주고, 제각기 흩어져 있는 것을 한데 모으면서 그들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릴리는 부인의 로맨틱한 환상의 베일을 벗긴다. 거기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서로 공존하지 못하고 하나를 억압하고 오로지 다른 하나만을 강요당하는 가부장 사회의 현실이 있다. 그러나 울프는 이러한 현실을 더 이상 이성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울프는 남성들이 전통적으로 구사해온 소설작법을 거부하고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남성적 언어 이전의 자연의 언어를 차용함으로써 남성의 원리와 여성의 원리, 이 두 원리가 상호 보완하고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생生이 완전해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