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지옥』은 루마니아 출신 문화인류학자 이리나 그리고레가 사회주의 체제하의 유년 시절부터 시작해 먼 타국인 일본으로 이주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험한 체제와 문화와 세대와 언어의 전환을 모어가 아닌 일본어로 써낸 오토에스노그래피다. 저자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경험한 어린 시절부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좇아 문화인류학자가 된 과정, 조사지였던 일본에 정착하여 이주민이자 두 딸의 엄마이자 연구자로 살아가는 현재까지 자신이 겪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그와 더불어 이념과 체제의 변화가 일으키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살아온 조부모와 부모, 자신까지 3대의 가족사를 담담히 서술한다.
기억 속의 단편, 일상의 사소한 마주침, 자기만의 감각 경험에서 시작하는 저자의 글은 자연스럽게 삶, 예술, 문화, 인간, 사회 등 보편적 주제와 연결되며 개인적인 경험을 인류학적인 고찰로 확장한다. ‘타인’을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민족지(民族誌)가 아니라,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기술하는 자기민족지는 오직 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인류학적 가치를 지닌 글이다. 시적인 문체로 시간과 장소, 꿈과 현실, 개인과 사회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저자의 글은 독자와 육체적·정신적·감정적 공명을 일으키며 읽는 이를 글 속으로 빨아들인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일본어로 옮긴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이 책에 잡아먹히는 것과 같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