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도덕경을 번역할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주역을 번역하면서 별수 없이 주역 참동계를 번역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어서 주역 참동계를 구성하고 있는 철학이 도덕경에 들어있으므로 인해서, 도덕경을 번역하는 일이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외에도 도덕경을 번역해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는 주역의 번역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즉, 주역(周易)은 유교(儒敎)가 망친 전형적인 책이다. 이와 더불어 유교가 망친 전형적인 책이 바로 도덕경(道德經)이다. 이는 유가의 입장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즉, 도덕경(道德經)은 유가(儒家)들의 허례허식(虛禮虛飾)과 위선(僞善)을 말 그대로 잘근잘근 씹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가들은 도덕경을 해석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자기들의 추악하고 더러운 치부를 덮기 위해서 도덕경의 원래 뜻을 아주 교활할 정도로 교묘하게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도덕경의 깨끗한 민낯이 아니다. 이는 유교를 국교로 도입한 한무제(漢武帝)와도 연결된다. 즉, 전쟁광(戰爭狂)이었던 한무제는 전쟁을 극도로 싫어하는 도교(道敎)를 짓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자동으로 피비린내와 절규로 얼룩진 거대한 제국에 의지해서 권부(權富)를 향유하던 유교(儒敎)의 이익과도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유교가 힘을 발휘하면서, 주역과 도덕경은 자동으로 왜곡(歪曲)된 형태가 정상(正常)인 것처럼 인식되기에 이른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떤 누구도 주역과 도덕경의 진짜 깨끗한 민낯을 보여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여기에 추가로 거대한 장벽이 하나 더 있다. 즉, 주역과 도덕경은 철학(哲學)을 공유(共有)하는데, 이 철학의 근본이 양자역학(量子力學)이라는 사실이다. 양자역학은 지금도 어려운 학문이다. 그래서 주역에서처럼, 도덕경도 양자역학을 모르는 일반인들도 읽기 쉽게 풀었다. 추가로 유교가 어떻게 도덕경을 짓밟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유가의 입장에서 처음으로 해석한 도덕경을 동시에 실어줬다. 이 책이 바로 노자 하상공 장구(老子河上公章句)이다. 그래서 노자 도덕경을 해석한 다음에 곧바로 노자 하상공 장구(老子河上公章句)를 해석해 줬다. 이는 두 책의 내용을 곧바로 비교해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평가는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그래서 원래 도덕경의 원문은 몇 글자가 안 되어서 분량이 적지만, 본 번역서는 원래 분량의 세 배 정도까지 불어나게 되었다. 도덕경(道德經)은 크게 전반부 도경(道經)과 후반부 덕경(德經)으로 구성된다. 도덕경의 전반부를 구성하고 있는 도경(道經)에서는 주로 인간이 사는 세상을 가지고 노는 에너지의 원리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도덕경의 첫 장은 주역(周易)의 에너지 개념인 태극(太極)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도경에서는 양자역학의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도덕경의 후반부를 구성하고 있는 덕경(德經)은 이런 에너지 원리가 인간의 세상에서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다루고 있다. 이때 유가들은 도경과 덕경 모두에서 자기들의 어설프고 교활한 사상을 이용해서, 도덕경의 깨끗한 민낯을 심하게 왜곡하게 된다. 그래서 본 연구소가 발행한 도덕경은 원래 도덕경의 깨끗한 민낯을 최초로 보여줄 것이다. 물론 이때 기존 도덕경의 해석에 익숙한 독자는 심한 인지부조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도덕경의 진실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본 책은 양자역학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쓰였다. 물론 한자를 전혀 몰라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쓰였다. 그동안 암호문과 같은 도덕경을 읽으신 분들에게는 행운이 될 것이다. 이제 그동안의 도덕경에 대한 허울을 벗겨내고, 도덕경의 진정한 속살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