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페미니즘 이론의 유입과 더불어 거대담론의 붕괴로 촉발된 사회운동의 영향으로 우리 문학에도 본격적인 여성 문학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전의 여성 문학이 여성 문법의 개발과 남성적 억압 구조의 의식화라는 문학적 성취를 쌓아 왔다면, 1990년대의 여성 문학은 여성내면의 탐구와 가부장적 가족 제도로부터의 탈출 욕망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냈고 2000년대의 여성 문학은 발칙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한껏 가벼워지고 있다.
그러나 등단 10년 만에 첫 창작집 『평행의 아름다움』을 펴낸 정영선은 이러한 도도한 흐름을 거부한 채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우선 그녀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는 위악과 폭력으로 일그러져 있거나 해결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는 전망부재의 세계이다. 그리고 소설을 지탱하고 있는 서사는 아이러니와 풍자를 바탕으로 한 수수께끼와 같은 미로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비대한 권력으로 점철된 남성지배 체계와 세계의 폭력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전망이 소거된 현실주의를 담고 있다. 정영선은 원초적으로 훼손된 남녀의 폭력과 위악의 관계 양식을 통해 2000년대 여성 문학의 새로운 자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