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유수진 시인의 첫 시집 『잘 구워 낸 여름들은 유행가가 되고』가 걷는사람 시인선 151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5부에 걸쳐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매개로 존재의 조건을 탐색하는 시편들을 선보인다. 해류를 떠도는 오리, 언덕을 오르는 당나귀, 화덕에서 구워 낸 계절, 녹슨 못과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들은 비극적인 현실을 과장 없이 비춘다. 관념을 설명하는 대신 대상의 물성과 움직임을 따라 사유를 전개하는 시들은 사물을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다룬다. “씨앗은 마르는 동안 꽃을 설계한다”(「꽃씨는 언제 꽃을 설계할까」), “최고의 속도는 어쩌면 멈칫”(「사과나무 아래서」)과 같은 구절은 사물들의 고유한 속도와 리듬을 포착해 존재의 이면을 비스듬히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