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1478) 사월 초하루, 스물두 살 된 종이 제 발로 대구 관아에 들어간다. 들어가서 제 아비의 이름과 할아비의 이름을 대고, 스물두 해 동안 죄인을 점고할 때마다 저를 대신해 불려 나간 아이가 있었다는 것도 댄다.
그해 칠월 초아흐레 새벽에 그는 궐 뜰에서 임금 앞에 서고, 구월 그믐날 새벽에 종의 문서에서 놓여난다. 그 자리에서 이름을 받는다. 일산(壹珊), 하나 남은 산호다. 대신 불려 나간 아이의 이름은 어느 종이에도 오르지 않는다.
그는 하빈으로 돌아가 이듬해에 터를 닦고 마루를 깔고 편액에 태고(太古) 두 자를 걸었다. 신축년 유월 초이레 저녁부터 산자락에 밥그릇 여섯을 놓기 시작한다. 그가 놓고 아들이 놓고 손자가 놓는다. 을축년 유월에 손자가 꿈을 꾼다. 문 밖에 굶은 얼굴 다섯이 서 있다. 이듬해 유월 초이레에 그 집은 처음으로 여섯 이름을 부른다.
임진년에 왜적이 들고 도성이 탄다. 난민이 장례원과 형조를 먼저 태우는데 종의 문적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정유년에는 그 집 마루가 타고 지방 여섯 장이 궤째 탄다. 남는 것이 자꾸 줄어든다.
계묘년 사월 스무하루, 서울의 이름 없는 예문관 검열 하나가 남의 계사와 남의 비답 사이에 잔글자 두 줄을 끼워 넣는다. 이 집안의 일로 남은 당대의 관찬 기록은 그 두 줄이 전부다. 그는 넉 달을 더 알아보다 그친다. 물어볼 데가 다 남의 입이었기 때문이다.
하권은 제3부 점고와 제4부 태고, 제20장에서 제40장까지다. 부록으로 등장인물표와 연표를 붙였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과 경국대전, 대명률, 분재기와 호구단자 같은 당대의 기록을 바탕에 두고 썼다. 각주는 해설이 아니다. 집필하면서 무엇을 사료로 확인했고 무엇을 확인하지 못했는지를 밝힌 것이다. 확인하지 못한 자리를 지어 넣었으면 지어 넣었다고 각주에 적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소설인지를 읽는 사람이 스스로 가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