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는 그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함축하고 나비는 날갯짓 한 번으로 자신의 존재를 함축한다. 한 방울의 바닷물은 드넓은 바다를 함축하고 바다는 다시 수많은 강의 의미를 함축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돈이라는 인물 속에는 고려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근원적 뿌리가 함축되어 있다. 그를 통해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과도기 사회의 전체 모습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접하고 있는 신돈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그의 정치적 적대자들이 남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큰일도 작은 것으로, 깊은 의미가 있는 일도 별 볼일 없는 것으로 기록된 면이 많다. 신돈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간헐적, 혹은 분산되어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 사료가 워낙 한정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신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뿌리깊이 우리의 인식구조를 사로잡은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평범한 일반인이 장시간 공을 들임으로써 신돈에 관한 그간의 역사 기록과 연구 및 논의를 종합한 것이다. 신돈이 처한 사회적 위치와 상황을 바탕으로 인물과 업적을 재해석하고 왜곡된 부분은 복원하려 했다. 또한 저자는 고려 말의 시대적ㆍ사회적 상황과 사소해 보이는 신돈의 행동을 연결시켜 분석하고 있으며, 신돈의 마음과 사고를 정신분석학 이론과 사회심리학을 통해 재구성하고 있다.
과연 신돈이 이루고자 한 꿈은 무엇이고, 그 세상으로 가는 길에서 그가 맞닥뜨린 딜레마는 무엇이었을까? 조선 개창의 주역들에게 신돈은 무엇을 남겨주었을까? 그리고 거칠 것이 없던 약자들의 영웅 신돈은 왜 갑자기 죽임을 당했을까?
이 책은 이러한 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돈을 둘러싼 편견이 존재하게 된 원인과 그 이유를 밝히고 신돈의 약점이 강점이 되는 원리와 통쾌한 전략, 그에 따른 성과를 살펴본다. 또한 신돈의 꿈이 미완에 그치게 된 원인을 짚어보고,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그와 관련한 몇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본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만을 주로 나열하던 기존의 역사인문서들과 달리, 동서양 및 근현대의 이론과 사상이 내용 곳곳에서 분석의 토대를 이루어 독자에게 역사적 인물과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것이다.